작성일 : 10-09-08 13:14
지금은 때가 아니야 - 김창송 회장님
 글쓴이 : 홍보팀
조회 : 4,295  

지금은 때가 아니야

어느 분의 수필을 읽다가 한 대목이 내 시선을 끌었다. “영국 왕실은 햄릿의 연기를 잘 소화해 낸 배우 로렌스 올리비에에게 작위를 내려 ‘서(Sir)’라는 경칭이 붙게 하였다.”는 바로 그 문장이었다. 그런데 이 ‘서’라는 낱말을 대하는 순간 나에게는 연상되는 한 일화가 떠올랐다.

지난날 미 대륙에서 흑백 갈등이 기승을 부릴 때의 일이다. 한 낮에 거리를 활보하던 백인 젊은이들이 흑인 노인에게 길을 물었다. 노인은 하던 일을 멈추고 자세히 그리고 친절히 가르쳐 주었다. 그러나 이야기를 다 듣고 난 한 젊은이가 느닷없이 노인의 뺨을 때렸다. 미천한 흑인이 백인에게 ‘서’라는 존칭을 붙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마침 옆에서 이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아들이 울분을 참을 수 없어 그들에게 대들려고 하니 길에 쓰러져 피를 흘리고 있던 아버지가 아들을 붙잡고 이렇게 말했다.

“안 돼. 지금은 싸울 때가 아니다. 참아라, 참아야 한다.”

복받쳐 오르는 억울함을 누를 길이 없는 아들은 그 자리에서 괴롭게 소리를 지르며 미친 듯이 벌판으로 내달렸다. 그는 그날 밤 교회의 십자가 앞에 엎드려 “어찌하여 나를 저주받는 흑인의 아들로 태어나게 했습니까.” 하고 창조주에게 원망을 하며 흐느끼고 있었다. 이 때 그의 등 뒤에서 낮은 음성이 들려왔다.

“사랑하는 내 아들아, 너는 먼 훗날 반드시 백인보다 나은 흑인이 될 것이다. 그 때가 바로 네가 이기는 때다. 그러나 지금은 그 때가 아니야.”

아버지의 부드럽고도 근엄한 타이름과 함께 흑인 부자(父子)는 부둥켜안고 눈물로 밤을 지새웠다. 그 아들이 나중에 세계적인 가수가 된 낫 킹 콜이다. 그는 훗날 카네기 홀에서 그리고 링컨센터 같은 훌륭한 음악의 전당에서 수없이 노래를 불렀다. 지난날의 잊지 못할 설움을 한풀이나 하듯이. 그 때마다 그는 많은 백인 청중들을 감동시켰고, 그칠 줄 모르는 열광의 박수 소리는 장내를 뒤흔들었다. 아버지가 말씀하신 ‘그 때’가 그에게 찾아온 것이다.

사람의 한 평생은 고해(苦海) 같다고 한다. 그리고 그 일생은 마라톤같이 힘겨운 달리기에 비유되기도 한다. 그렇다면 어느 누구도 이 가시밭 같은 인생길을 건너뛰어 갈 수는 없는 일이지 않겠는가. 세상살이를 하면서 사람들은 누구나 크고 작은 아픈 사연들을 간직하고 살아가게 마련이다. 어찌 명성 높은 저 유명가수에 비할까마는 나도 예외일 수는 없었다.

그러니까 피란 시절,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가난과 싸울 때였다. 급한 학비라도 손에 쥐려면 공사판에 나가 하루 품팔이를 하는 것이 그래도 가장 손쉬웠던 시절이었다. 어느 날, 이른 아침 나는 모래를 담은 지게를 지고 흔들리는 사다리를 조심조심 밟으며 옥상으로 올라가고 있었다. 그런데 그 때 갑자기 뜨거운 물이 확 하고 얼굴에 와 닿았다. 깜짝 놀라 머리를 들고 올려다보니 창가에서 넥타이를 맨 한 신사가 한 손에 찻잔을 들고 나를 내려다보고 있는 게 아닌가.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었다. 나는 떨리는 몸으로 그 사람을 뚫어지게 쳐다보며 분을 삭이느라 애를 썼다. 바로 그 때 사다리 위에서 멈칫거리고 있는 나를 올려다보던 험상궂은 현장 감독이 불호령을 내렸다. “젊은 놈이 그까짓 모래 지게가 뭐 그리 무거워 비실대느냐. 그러려면 내일부터는 나오지도 말아라.” 위아래에서 한꺼번에 몰아붙이는 비정한 협공(挾攻)에 나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얼굴에는 구정물인지 분노의 눈물인지 모를 것이 마구 흘러 내렸다. 흙이 묻은 손으로 훔치고 또 훔쳐도 그칠 줄을 몰랐다. 젊은 혈기로 충천했던 그 시절에 나는 삶 자체를 얼마나 저주했는지 모른다. 그러나 오늘이 있기까지 나를 지켜온 것은 바로 그 날 그 때 참음의 가르침을 잊지 않았기 때문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조용히 낫 킹 콜의 테이프를 틀어본다. 잔잔히 가라앉은 목소리, 애수에 젖은 듯한 그 호소력, 마치 고통 받는 사람들에게 삶의 희망을 심어주는 것 같은 음색이다. 어느 음악평론가는 「낫 킹 콜의 감춰진 메시지」라는 글에서 “...그는 음악이란 도구로써 인종간의 장벽을 여지없이 허물어 버렸다.”고 썼다. 그의 노래 앞에는 백인과 흑인이 따로 없다. 그는 진정으로 노래로써 모든 이의 사랑과 존경을 받는 ‘서’가 된 것이다.

낫 킹 콜은 오래 전에 이승을 뜨고 없지만, “지금은 때가 아니야.”하고 피 흘리며 애원하던 그의 아버지의 정신은 이제 손녀에게까지 전해 내려오는 것 같다. 손녀 나탈리 콜이 두툼한 입술로 부르는 노래는 아버지의 애조 띤 음색과 너무도 닮았다. 그래서인지 요즘 그의 노래가 젊은이들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다고 한다. 나는 오늘도 낫 킹 콜의 감미로운 노래를 들으며 울분과 설움을 감미로움으로 승화시킨 한 인간의 위대한 정신과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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