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0-09-15 10:26
왼손과 오른손 - 김국자 작가님
 글쓴이 : 홍보팀
조회 : 4,693  

왼손과 오른손

작가 김국자

 

눈이 왔다. 세상이 촉촉하다. 나무들이 좋아하는 표정을 짓는다. 겨울을 지낸 나무들이 바람에 흔들리며 봄을 부르고 있다. 입춘 우수도 지났다. 눈이 펑펑 쏟아져도 겁나지 않는다. 곧 녹아내릴 테니까. 뜰에 내린 눈도 땅 속으로 스며들어 군데군데 구멍을 내고 있다. 한겨울이라면 내린 눈이 꼼짝 않고 뜰을 덮고 있을 테지만 절기는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층계에 쌓인 눈을 바로 쓸어 보니 반은 물로 변해 버렸다. 흘러내리는 물이 대지를 부드럽게 어루만지고 있다. 그 속에서 꿈틀거리고 웅성거릴 많은 생명들을 떠올리며, 산다는 일이 참 좋은 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비를 든 내 왼쪽 손목이 아파왔다. 눈을 제대로 쓸어내기가 힘들 정도로 아팠다. 며칠 후 병원에 갔다. 의사 선생님이 엑스레이 사진을 들여다보고 내 손목을 관찰하더니 힘줄에 이상이 왔다는 것이다. 어린아이를 돌보는 사람이나 무거운 물건을 많이 드는 사람에게 생기는 병으로 병명은 건초증이라 했다. 그리고 치료해 보겠지만 낫지 않으면 수술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작년에 집수리를 하느라 살림살이를 내 손으로 싸서 이사를 두 번씩이나 했더니 손목에 무리가 온 모양이다. 왜 하필 왼손목에 이상이 온 것일까?

 

요사이 왼손과 오른손의 하는 일을 유심히 관찰해 보기 시작했다. 두 손을 나란히 놓고 내려다보니 어디서 본 듯한 손이었다. 아! 돌아가신 친정어머니 손이었다. 손등으로 혈관이 굵게 보이고 봉숭아 줄기 모양의 손끝마디 끝에 닳아 버린 손톱, 손이라기보다 연장같이 쓰셨던 어머니의 손….

 

나이든 여인의 손이 통통하고 손톱에 매니큐어까지 바른 것을 보면 ‘복도 많군. 궂은일은 하지 않았나 보지, 손이 저리 고운 것을 보면….’이런 생각이 든다. 대신 손마디가 굵고 거친 손을 보면 마음 한구석이 찡해오면서 그 손이 정직해 보인다. 나도 손을 아끼지 않고 일을 해 왔다. 손에 대해서 고마운 생각을 한 번도 해 본 일이 없이 참으로 많이 부려먹었다.

 

백일 사진에서 본 내 손은 참 예뻤다. 오목조목 들어간 조그만 손등에서 뻗어 나온 앙증맞은 다섯 손가락…. 그런 예쁜 손이 육십여 년을 살다 보니 보기에도 딱한 모양으로 된 것이다. 그래도 오른손보다 왼손이 조금은 나아 보였다. 그런 점으로 보아 왼손보다 오른손을 더 많이 써 온 것이 분명한데, 왜 왼 손목에 이상이 온 것인지 모르겠다.

 

나는 오른손잡이다. 오른손이 칼질을 하면 왼손은 물건을 붙들고 있다. 연필을 깎을 때도 마찬가지다. 오른손으로 냉장고 문을 열면 왼손으로 물건을 꺼낸다. 단추를 낄 때도 오른손으로 단축구멍을 벌리면 왼손으로 단추를 구멍으로 밀어 넣는다. 왼손은 오른손을 부축하면서 버티고 밀고 하다 보니 손목이 꺾이고 비틀리고 했다. 힘줄에 이상이 생길만 했다. 오른손은 평소에 일을 많이 해서 강한 힘줄이 생겼는데 비해서 왼손은 그렇지 못한 것인지, 사람도 평소에 일을 많이 한 사람은 심한 일을 해도 이겨내지만 약한 사람은 병이 나는 이치 같기도 하고….

 

참 희한한 일을 오른손과 왼손이 말없이 최선을 다해서 서로 돕는다는 것이다. 서로 나무라는 법이 없이 그렇게 사이가 돈독하고 좋을 수가 없다. 나는 문득 부부가 왼손과 오른손 같은 사이라면 퍽 행복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남편은 오른손 역할을 하고 아내는 왼손 역할을 하고. 그런데 보통의 부부들은 자기 역할을 하면서 투덜대고 싸우면서 서로 일을 미룬다. 일이 잘못되면 자기 탓이 아니라고 발뺌을 한다. 그뿐이랴, 마음이 맞지 않으면 갈라서기까지 한다. 그런데 왼손과 오른손은 한 손가락이 잘려나가도 가엾게 여기며 잘려 나간 손가락의 몫까지 해 준다. 의좋은 부부를 거문고와 비파의 조화처럼 금슬琴瑟 좋은 부부라 칭하듯이 오른손과 왼손이라고 칭해도 무리가 없을 것 같다.

 

이삼 개월 치료를 받아 보았지만 별 차도가 없자 의사 선생님은 수술을 하자고 했다. 수술이라는 소리에 겁먹은 나에게 간단한 수술이라며 안심시키는 것이었다. 그리고 수술 날짜를 받았다.

 

저녁 여섯 시 수술실에 들어갔다. 그냥 도망가고 싶은 마음이 잠시 들었지만 수술대 위로 순순히 기어 올라갔다. 두 눈을 꼭 감고 있었지만 긴장되는 순간이었다. 부분 마취로 들어가는 것 같았다. 심한 통증과 저림이 왔다. 나는 이를 악물었다. 차라리 전신 마취라면 아무것도 모르는 사이에 수술을 받았을텐데…. 눈을 감아서 볼 수 없지만 귀로 다 들리니 그 고통은 배로 느껴졌다.

별 생각이 다 떠올랐다. 혹시 이 시간에 전기가 나가면 어쩌지? 자기 발전기가 있겠지? 그때 문 밖에서 휴대폰 소리가 들리고 통화하는 남편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 목소리가 들리는 순간 왠지 마음이 조금 놓이는 것이었다.

 

얼마 후 저린 손이 따갑고 열이 오르면서 통증이 봄눈 녹듯이 가라앉았다. 마치 얼어붙었던 대지가 눈 녹은 물에 풀리듯이…. 의사 선생님은 이제 피가 통하는 것이라고 했다.

수술은 무사히 끝났다. 수술실에서 나오는 나를 보고 남편은 빙긋이 웃었다. 돌아오는 차 속에서 오른손으로 남편의 왼손을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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