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0-09-28 10:30
박연폭포 - 김창송 회장님-
 글쓴이 : 홍보팀
조회 : 4,488  

박연폭포

 

김창송 성원교역(주) 회장

 

입경 수속을 마치고 개성 땅에 들어선 버스는 기다렸다는 듯 쏜살같이 달린다. 신호등이 없는 네거리에는 지체할 일도 별로 없다. 낙엽 지는 개성 날씨는 서울과 별반 다를 바가 없다. 한 눈에 들어오는 낮은 산들이 사이좋은 형제들처럼 나란히 차례로 누워있는 모습이 정겨워 보였다. 산마다 푸르름은 어디가고 앙상히 추위에 움츠린 모습이 마음이 저며 왔다. 그래도 외곽 도로변에 심어진 옥수수 밭은 제법 여기저기 이어져 그나마 옛 고향 마을에 찾아온 듯 넉넉함이 인다. 어떤 수숫대는 벌써 알곡이 여물었는지 밭의 한 두 곳에 수숫잎이 수북이 쌓여 있으나 일꾼들의 그림자는 보이지 않았다. 밭 건너편에는 콩밭이 펼쳐 있고 그래도 제법 푸른 잎을 소복이 보듬고 무성히 잘 자라고 있었다. 달리는 차창 너머 푸른 하늘을 바라보노라니 상처뿐인 이 땅의 지난날이 주마등같이 흘러간다.

 

어린 시절 개울가에서 맨발로 뛰어놀던 옛 고향, 자전거로 20리 길을 통학하던 중학시절, 해질 무렵 밭둑에 매어 놓은 어미 소를 끌고 집으로 돌아오던 어린 추억. 그토록 가보고 싶었던 북녘 땅을 밟고 먼 산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켜켜이 쌓인 애환의 지난날을 어디서부터 풀어야 할 지 뒤엉킨 실타래 같기만 하다. 개성시내 한 복판을 차선표시 하나 없는 낡은 길을 우리 현대 버스는 보란 듯 줄을 이어 달린다. 버스들은 작은 검정색 선도차를 놓칠세라 바싹 앞차 꽁무니를 따른다. 그래도 박연폭포로 이어지는 내리막 길가에는 코스모스 꽃도 간혹 외롭게 피어 산들산들 거리는 꽃은 남과 북이 따로 없었다. 순간 친한 옛 벗을 만난 듯 반갑기만 하다. 아니 그 옛날 어머니의 미소 띤 얼굴을 대하는 것만 같다. 이 곳 하늘 어디에선가 잠들고 계실 나의 어머니는 어느 덧 반백의 세월을 넘어 어언 51주기도 저만치 흘러갔다. 산 속 언덕 군데군데에서 하얀 짙은 연기가 하늘 높이 솟아오른다. 산불이 아니냐고 황급히 안내원에게 물었으나 그것은 감자, 옥수수, 콩 같은 것을 구워먹기 위한 아이들의 불장난이라며 대수롭지 않게 넘긴다. 안내원의 앵무새 같은 말에는 뒷전이고 나는 그들의 삶의 내면과 시내 풍광에만 눈귀가 쏠려있었다. 낯선 타향살이 속에서 비로소 고향의 애틋함을 느낀다고 했던가. 남쪽에서 정을 내리고 살아 온지도 어언 갑년의 세월이 흘렀다. 넉넉한 거리의 가로수는 수령이 제법 쌓여 푸른 잎을 켜켜이 거느린 가지들이 마치 허리 굽은 촌로의 모습과 같다. 식당 앞 개울가의 버드나무는 휘영청 늘어진 가지가 찾아온 객들에게 더없는 위안이 된다. 그래서 일가 이곳은 한 때 조상들이 풍류를 즐기던 명당이라고 자랑이 끊이지 않는다.

 

북녘 사람들이란 시중드는 젊은 여성들과 안내원 남성 두 사람뿐이다. 그들과의 대화는 금기시 되어 있으니 꿀 먹은 벙어리의 잔칫집 같기만 하다. 한 때 개성상인으로 명성 높았던 시내 장터는 보이지 않고 오고가는 차량도 눈에 뛰지 않으며 저들의 낡은 자전거와 걸어 다니는 모습이 지난 날 해방 직후의 어수선한 모습 그대로다. 남루한 옷을 걸친 중년부인 몇몇은 등에 무엇인가 둘러메고 총총 걸음으로 어디론가 걸어가고 있었다. 그 속에는 어린 것들을 위한 먹을거리가 있을지도 모른다. 길가의 논밭에서는 남녀 학생들이 교복을 입은 채 바지를 걷고 무슨 일인가 하고 있었다. 그래도 간혹 여자 아이들이 흰 블라우스에 빨간 마후라를 하고 두 세 명이 지나가는 모습이 이곳이 북한임을 실감나게 한다. 집집마다 기와지붕은 낡아 퇴색되고 어떤 집 지붕에는 누런 옥수수와 빨간 고추를 말리고 있었다. 왜 앞마당을 비어놓고 힘들게 지붕에서 일까 궁금했다. 달리는 버스 속에서 간혹 골목길을 훔치듯 엿볼 수가 있었다. 아이들이 조각돌을 가지고 놀고 있었다. 그 속에 장정들도 할 일 없이 모여서 우두커니 서 있었다. 한마디로 생기를 찾을 수가 없었다. 도로변에는 붉은 페인트로 ‘전기기구수리’ ‘리발관’ ‘결혼식사진관’ ‘닭곰집’등 한글 간판들이 이따금씩 눈에 띈다. 간판들도 객이 없어 가을 햇빛 속에 졸고 있는 것만 같다.

 

고려 500년의 역사가 숨 쉬는 곳이라 저들은 자랑하지만 양분된 동포의 생각과 모습은 완전히 이반인 낯선 땅과 같았다. 마을과 마을 앞에는 높다란 돌탑이 하나씩 세워져 있고 그 앞에는 커다란 OOO의 사진이나 붉은 글씨의 구호들이 촘촘히 새겨있다. 우리는 차 속에서 행인들에게 손을 흔들었으나 그들은 나와는 무관하다는 듯 눈길조차 주지 않는다. 예나 지금이나 다름없는 가을 햇살, 시원한 개울 바람, 그리고 박연폭포의 낙하유수만이 그 옛것이라고나 할까. 지금은 모든 것이 동면기에 접어들어 이곳이야 말로 정지된 지구촌의 한 모퉁이 같았다.

이윽고 버스는 남쪽 한계선을 넘고부터는 신나게 달린다. 무거운 침묵 속에서 굳어버린 듯 아무도 입을 여는 사람이 없다. 과연 우리는 오늘 무엇을 가슴으로 보고 왔는가. 허탈한 하루의 반쪽 관광이 더욱 가슴을 아프게 한다. 얼마나 더 가슴을 조여매야 그 내일이 다가 올 것인가.

 

 

2008.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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