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0-10-11 15:14
널문리 주막에서 - 김창송 회장님 -
 글쓴이 : 홍보팀
조회 : 4,553  

널문리 주막에서

 

김창송 성원교역(주) 회장

 

영하의 추위는 며칠 째 기승을 부린다. 오늘은 예정대로 판문점을 찾아가는 날이다. 그곳은 휴정협정이 조인된 장소임은 누구나 다 알지만 막상 찾아 둘러보는 일은 그리 쉽지가 않다. 나도 그 언젠가 스웨덴 K장군의 안내로 현지로 갔었으나 때마침 북녘의 속사정 때문에 되돌아서 오고 말았다. 오늘은 최북단 대성동 마을 크리스마스트리 점등식에 가는 길에 들러보기로 했다.

 

영하의 바람이 몰아치는 임진강 들녘을 지나 키 높이 가시철망을 바라보며 JSA공동경비구역에 들어선다. 길섶의 억새풀만이 우리를 마중이라도 나온 듯 흔들리고 있었다. 저 북녘 산등의 잔설을 바라보노라니 더욱 온 몸에 한기가 돌고 있는 듯했다. 드디어 군사정전위원회 본회의장 앞에 이르렀다. 북녘 경비병은 돌부처 마냥 우리를 응시하고 있었다. 과연 그는 지금 무엇을 보고 있는 것일까. 영욕의 세월이 말없이 흘러간 역사의 현장, 그 옛날 이곳은 고즈넉한 산간 마을로 주막집까지 다해야 모두 네 채의 초가집이었고 오가는 길손들의 쉼터로 쓰였다고 한다. 그 때만해도 이곳을 ‘널문리’라고 불렀다는데 그 후 6·25 휴전 회담이 열리면서 중공군 대표들에게 ‘널문리’를 한자로 지명을 알리기 위해 ‘널’을 ‘판(板)’으로, ‘문’은 ‘문(門)’으로 개명하여 ‘판문점(板門店)’으로 표기된 것이 어느덧 세계적 명소가 되었다.

 

감회어린 호기심에 여기저기 둘러보고 있는데 안내원이 우리를 푸른 지붕 본회의장으로 인도한다. 회담장 한복판은 TV에서 익힌 대로 분계선 상에 양측대표 테이블과 의자가 다섯 개씩 남북으로 놓여있었다. 우리 측 동쪽 중앙에는 검은 안경에 하늘색 군복을 입은 젊은 헌병이 부동자세로 서있었다. 한 때는 가시 돛인 설전이 오가던 을씨년스러운 이곳이지만 지금은 적막만이 감돌뿐이었다. 그나마 젊은 경비병과는 기념촬영이 허용되어 한 장 한 장 찍을 때 마다 훈풍이 되살아나고 있는 듯 했다. 안내원은 입을 다문 우리들에게 “궁금한 점이 있으면 무엇이든 물어보세요.”라고 했으나 아무도 나서는 사람이 없었다. 옆 건물로 나와서 안보 브리핑을 들으며 이곳이야말로 이 땅에서 가장 사연 깊은 마을임을 재삼 확인했다. 형제끼리 총부리를 겨누던 지난 60년의 세월이 침묵하고 있는 곳이다. 그러나 지뢰밭 같은 이곳은 언제 무슨 사연으로 돌발적인 사건이 일어날지 아무도 모르는 ‘세계 제일의 위험 지역’이라고 부언한다. 그곳을 나와 새로 단장한 이차선 아스팔트길을 지나노라니 얼어붙은 마음은 고향 하늘로 날고 있는 듯 했다.

 

옛날에 숱한 사람들/ 건너다니던/ 강 나루터/ 오늘은 강물만 흐를 뿐/ 배도 없고 사공도 없고/ 강둑에/ 분계선이란/ 철조망까지 쳐놓고/ ---/ 그도 모자라 총 멘 병정/ 강 언덕 위에서 지키는가/ 그래도 강은 뚫고/ 자유를 찾아 넘어오다가/ 가엾다/ 거센 물결에/ 시체 되어/ 떠내려 오고./

 

어느 실향민의 애달픈 시어가 때 이른 외기러기처럼 북녘 하늘을 감돌고 있는 듯했다. 크리스마스트리가 기다리는 대성동 마을로 가는 버스 속에서도 안내 병사만이 길 가의 표시판 하나하나를 열심히 설명하고 있었다. 드디어 대성동 마을에 들어섰다. 저 앞마을에는 여전히 북풍에 휘날리는 태극기가 우리를 반기듯 나부끼고 저 실개천 건너편에는 여전히 인공기가 우리 것보다 더 높이 우뚝 솟아있다. 불과 10여분 거리 앞에서 흐르는 개울물은 지금도 남과 북을 졸졸 가르고 있었다. 이렇게 서로가 벙어리 마냥 말없이 바라보아온 세월도 어언 반세기가 넘었다. 부르면 들릴 것만 같은 건넛마을이지만 아무도 부르지 못 한 마을에 임자 없는 냇물만이 예나 지금이나 저기 저렇게 외롭게 흐르고 있었다. “북녘을 향해 손짓하지 마세요.” 이 모습은 북측 이 권총을 들어 저들을 겨누는 모양으로 오인할 수도 있다고 했다. 웃지 못 할 그 짧은 한마디에 가슴이 아려온다.

 

드디어 준비한 예배와 점화식에는 미국병사와 한국군, 그리고 스웨덴, 스위스의 중립국 장교들이 함께 자리하고 있었다. “저 천사여/ 찬송을 높이 불러서/ 광활한 천지를/ 울리게해/ ---.” 크리스마스 캐롤은 올해도 얼어붙은 분계선을 넘어 북녘 하늘로 조용히 퍼져나가고 있었다.

 

오찬장에서는 케이크 커팅 순서가 있었다. 옆에 서있는 스웨덴 중립국 감시단 Y장군과 수인사를 했다. 우리 코리아를 위해 수고가 많다고 하자 그는 화평한 날이 어서 오기를 기원한다고 했다. 두 나라 감시단은 휴전 협정에 따라 지금도 정한 날, 정한 시간이면 회담장 남측 장소에 앉아 있다가 돌아온다고 한다. 그러나 북측의 폴란드와 체코의 감시단이 출석하지 않아 늘 헛수고를 할 뿐이라고 했다.

 

저 머나먼 지구촌 저쪽에서 극동의 코리아 ‘널문리’ 주막에까지 와서 오늘도 기약 없는 자리를 지키고 있으니 이런 웃지 못 할 넌센스가 또 어디 있으랴. 버스는 임진강을 건너오자 해방감에 젖은 듯 가속이 붙는다. 구름가린 북녘 하늘은 점점 멀어져만 가고 있었다. 한 해가 또 기울어지고 있다. 저 강가에서 모이를 쫓는 두루미 가족처럼 우리들 실향민의 아픔은 언제나 치유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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