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0-10-11 16:07
어느 착한 부부의 슬픔 - 이남옥 소장님 -
 글쓴이 : 홍보팀
조회 : 4,688  

어느 착한 부부의 슬픔

이남옥 서울사이버대 가족상담학과 교수 / 목동가족치료연구소 소장

상담소를 찾은 부부는 인상도 비슷했다. 수수한 차림이었지만 얼굴인상이나 앉은 자세에서 50평생 성실하게 살아왔던 모습이 엿보였다. 상담소를 찾은 이유에 대해 남편이 먼저 말을 꺼냈다. 옆에서 아내는 간간히 남편이 하는 이야기에 부연 설명을 하였다. 부부의 고민은 자녀였다.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 대학입시에 실패하면서 집에만 칩거하더니 극기야 은둔형 환자가 되어버렸다. 부부가 열심히 살았던 것은 자식을 잘 키우기 위한 것이었는데 아들에게 이런 문제가 발생하자 인생이 허무해진다면서 상담소를 찾은 것이었다.

 

부부는 대부분 같은 의견이었고, 간혹 중간에 아내의 보충 설명이나 다른 관점이 피력될 때 남편은 잠자코 들었다. 남편은 자신이 아들에게 너무 부담을 준 것 같다고 하였고, 또 그런 아들과의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이런 저런 시도를 했었단다. 그 시도는 유감스럽게도 실패로 돌아가곤 하였다. 이에 대해 아내는 남편의 시도가 좀 일방적이어서 아들이 싫어했다는 이야기도 하였다. 그 이야기를 듣고는 남편은 그런 면이 자신에게 있다는 것도 시인하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아내 역시 남편에게 모든 탓을 돌이는 것은 아니었다. 남편은 성실하게 일하고 가족을 사랑하는 사람이며 자신은 그런 남편을 사랑한다고 하였다.

 

두 사람과의 상담 분위기는 편안하고 진솔하였다. 누구도 상황을 과장하거나 미화하지도 않았고, 또 잘못을 인정하기도 하고, 무력감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기도 하였다. 상담을 찾은 부부로는 보기 드물게 조화로운 모습을 보여주는 부부였다. 이런 부부에게 문제를 일으키는 아들이 있다는 것은 언뜻 이해가 되지 않았다. 보통은 부모가 강압적이거나 방치하던가, 아니면 부부사이가 너무 좋지 않은 부모들일 경우 자녀의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그런데 이들 부부는 서로 존중하고 있었으며 부부사이도 좋았고, 성실하게 일하며 가족을 사랑하는 그야말로 착한 부부였기 때문이다. 왜 이들 부부에게 심리적인 병을 가진 아들이 있을까?

 

남편은 어느 가난한 집안의 장남이었다.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셨기 때문에 어린 나이에 가족을 돌보는 가장 역할을 해야만 하였다. 밑으로 동생이 5명이 있었는데 자신은 고등학교만 졸업한 후, 직업 전선에 뛰어들면서 가족을 돌보았다. 동생들은 가능하면 대학까지 뒷바라지 해주었다. 남보다 일찍 철들어 늘 열심히 살았다. 성실한 인상을 주는 준수한 외모와 성실함과 책임감 있는 행동은 주변 사람들에게 신뢰감을 주었고, 열심히 하는 일들은 고맙게도 늘 성공적이었다.

 

사업이 나날이 번창하게 되자 일손이 부족하여 부인도 함께 일선에 뛰어 들었고, 또 한참 뒤에 회사의 규모가 커지게 되자 대학을 졸업한 동생들도 형과 함께 일하겠다고 나섰다. 그런데 가족이 함께 하는 회사경영은 장점과 함께 많은 어려움을 낳았다. 큰형이 하는 사업으로 동생들은 직원으로 채용된 형태였지만, 동생들은 무의식중에 자신도 오너라는 생각을 하게 되고, 회사가 많은 이윤을 남기면 그것을 배분해야 한다고 여겼다. 그러나 회사가 어려우면 그것은 형의 몫이었다. 아무리 적자 운영이 되더라도 월급은 정확하게 가져가곤 하였다.

 

이런 동생들의 행동을 보면서 형은 못 본 척 넘겼다. 어차피 동생들 돌보는 것은 자신의 책임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아내에게는 이런 시동생들의 모습을 보는 것이 괘씸하기도 하고 화가 났다. 또 자신은 회사를 돕기 위해 자녀 돌볼 시간도 없이 열심히 일하는데, 동서들은 남편이 벌어다 주는 돈으로 편히 사는 것도 뭔가 불공평하게 느껴졌다. 게다가 제사와 같은 집안의 대소사와 어머니 모시는 문제는 당연히 큰 며느리 몫이었다. 부인은 여러 가지로 속이 상하지만 남편의 잘못도 아닌지라 남편을 탓할 수도 없었다. 남편 역시 아내가 힘들어하는 하는 것을 보면서, 그래도 동생들을 이해하자고 격려하였다.

 

이들 부부의 회사스트레스와 대가족 갈등은 고스란히 집으로 함께 귀가하곤 하였다. 아들은 낮에 혼자 지내다가 부모님이 오시면 반가운 마음에 매달리지만 부모님은 심신이 지친상태여서 자녀를 돌봐줄 여력이 없었다. 특히 엄마는 많이 우울해 하였다. 우울해 하는 엄마를 보면서 아들도 더 이상 자신의 요구를 표현하는 것은 어려웠다. 가족들은 누구도 서로를 원망할 수가 없었다. 누구의 잘못도 아니었으니까. 남편과 아내 그리고 아들 모두 너무나 착한 사람들이었다. 착하기 때문에 더 남을 탓하기는 힘들었다. 그러나 채워지지 않는 욕구- 보살핌을 받고 싶고 억울함을 표현하고 싶고, 배려 받고 싶은 욕구들은 철저히 외면당하고 있었다. 가족 모두가 각자의 기본욕구를 삼키며 조금씩 우울함과 친해졌다.

 

상담을 통해 각자가 느끼는 감정을 이야기 하게 하니, 모두들 할 말이 없다고 한다. 왜냐하면 모든 것을 이해하기 때문에... 그러나 여기에 바로 문제가 있는 것이다. 우리는 이해를 통해 중요한 감정들을 외면하고 있는 것이다. 착한 사람들의 특징으로 이해를 통해 감정을 억누르는 현상이 있다. 착한 사람들은 감정을 원초적이고 이기적인 것으로 여기곤 한다. 서운함, 억울함을 표현하는 것은 비이성적이라고 생각한다. 이성적이고 바람직한 행동은 참는 것, 모든 것을 착하게 이해해 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와 같은 이성적인(?) 행동은 갈등을 피하게 한다. 표면으로 나오지 않으니까 갈등이 없는 것으로 착각을 하게 하나 절대로 해결된 것이 아니다. 10년, 20년 눌려진 갈등은 자녀의 문제로 강력한 파워를 가지고 부활한다.

 

아들은 엄마의 우울이 싫었다. 엄마가 환하게 웃는 모습을 보고 싶었고, 또 엄마와 더 많은 시간을 가지고 싶었다. 그러나 엄마는 웃기에는 너무나 심신이 힘들었다. 엄마를 보채기에는 아들은 너무 착하고 이해심이 많았다. 부인 역시 힘들다는 것을 누구에게도 하소연하기 힘들었다. 고생하는 남편을 보면 안쓰러웠고 시동생들의 이기적인 행동에 대해 서운했지만 늘 애쓰고 수고하는 남편을 원망할 수가 없었다. 서운함과 원망을 참으려니 자꾸 우울해졌다. 남편은 동생들을 돌보아야 한다는 생각에 형으로써 베푸는 것이 도리라고 생각하였다. 자신도 가끔은 동생들이 괘씸하게 여겨졌지만 그걸 굳이 이야기 하는 것은 형답지 못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저 참는 것이 가장 최선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리고 더 열심히 일하는 것만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 줄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이 가족의 문제는 아이러니컬하게도 ‘착함’이었다. 착한 사람은 복을 받아야 하는데 오히려 자녀의 문제로 벌을 받고 있으니 이건 뭔가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된 것 같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어디에서 잘못되고 있는지를 발견해 낼 수 있다. 그것은 자신과 가족의 기본욕구와 감정에 대한 무시였다. 착한 사람은 이성적이고, 이성적인 사람은 감정을 표현하지 않는다는 오해가 있다. 착함이란 남을 배려하는 것이지 자신의 감정을 무시하는 것이 아니다. 감정이란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욕구와 관련되어 있다.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는 남과 잘 지내고 싶은 것도 있지만 자신이 존중받고 부분도 있다. 이들 가족을 보면 남들과 잘 지내려는 욕구는 충족되었지만 자신이 존중받고 싶은 욕구는 좌절되었다. 존중받는 느낌은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고 이를 상대방이 인정해 줄 때 체험되는 감정이다. 이 가족은 이 감정을 스스로 억누르고 무시했기 때문에 남이 알아 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모두가 조금씩 병들고 있었고 결국은 가장 약한 아들이 이 문제를 표출한 것이다.

 

‘착함’은 남에 대한 무조건 이해와 수용이 아니다. ‘착함’이란 자신의 감정을 표현해도 충분히 유지될 수 있다. 착함이란 내가 병들지 않고 진정으로 남을 배려하는 행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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