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0-10-11 17:26
산책길에서 - 김창송 회장님 -
 글쓴이 : 홍보팀
조회 : 5,345  

산책길에서

김창송 성원교역(주) 회장

모처럼 아침 산책길에 나섰다. 길섶의 푸른 잔디에 물방울이 초롱초롱하다. 저만치 떠오른 아침 햇살이 손짓하는 것만 같다. 좁은 길 작은 화살표를 따라 느릿느릿 내려오노라니 저 멀리 해변이 한 눈에 들어온다. 수평선은 잿빛 구름에 가리었고 기어오른 파도는 바위를 더듬고는 작렬하는 소리와 함께 모래톱을 남기고 사라지곤 한다. 유유자적 검푸른 바다에서 눈을 뗄 수가 없다. 마치 신비의 미로상자 같기만 하다. 천지의 연금술이 어쩌면 이토록 빈틈이 없을까. 마치 문안하듯 새 한 마리가 지저귄다. 쯩쯩쯩쯩 끽끽끽 그 소리 또한 쟁반에 옥이 구르듯 매끄럽고, 소리 없이 피어오른 민들레꽃이 발 아래서 하늘거린다. 흙을 헤집고 피어난 꽃 향은 또 어디서 찾아온 것일까. 갑자기 바닷바람이 밀려와 후덥던 제주의 아침을 상큼 열어준다. 하늘거리는 저 무명초마저 제 한 몫을 다하는 이 자연의 대 오케스트라, 숨은 지휘자 아래 연출되는 감동의 순간이 아닐 수 없다.

산책 나온 경상도 사투리의 중년부부, 머리 숙여 골똘히 사유하는 듯 홀로 걸어가는 저 젊은 여인, 느린 걸음의 노파들, 이렇듯 이 산책길은 자연과 호흡하는 나그네들의 소통의 길인 것만 같다. 저 언덕에는 분홍, 하얀 하늘색의 때 이른 코스모스가 작은 마을을 지어 그 가느다란 꽃대를 뽐내고 있었다. 이 무더위가 가고 입추가 지나면 그 다음은 서늘한 가을 저들의 세상이 오리라는 희망에서 일가, 이렇듯 제주의 대 자연에 아침 연출을 놓칠세라 쉼 없이 객들은 오가며 분주하다. 그러나 어느 시어처럼 ‘인간들은 서로 가고오고 하다가도 그 언젠가는 한 길로 갈 사람들’이라고 했던가. 한 번 왔으면 또 떠나온 곳을 찾아 가야하는 것은 정한 이치가 아니던가. 여우도 때가 되면 머리를 태생지를 향한다고 하지 않았던가. 산책길은 회한의 길인 것만 같다. 지난날이 아스라이 떠오른다. 저 바닷길을 따라 북녘으로 가노라면 나의 어린 시절 미역 감던 마을이 나온다. 그러나 이 모든 소원은 꿈같은 하나의 푸념일 뿐이다. 뒷짐 진 저 느린 걸음의 하얀 노인이 갑자기 두리번거리며 걸음을 멈춘다. 길을 잃어서일까. 아니면 다리에 근력이 쇠잔해져서 일까. 굽은 노인의 허리에서 내일의 내 모습이 오버랩 되는 것만 같다.

움틀 거리며 밀려오는 파도를 보노라니 지난 젊은 날이 그립기만 하다. 그 열정도, 그 울분도, 그 분노도 다 어디가고 이제는 한낱 흔적뿐이다. 생사의 기로에서 전전긍긍하던 불안의 그 날들, 삶조차 저주하던 지난 날 영욕의 세월은 바람에 씻기듯 다 지나가고 말았다. 이제 어느 덧 생의 종착역이 이렇게 번개같이 빨리 찾아올 줄이야. 그렇게 힘겹게 살아가던 그 옛 친구들, 내일의 무엇인가를 위하여 애써 살아가던 친구들, 타향살이에 눈물짓던 선배 박 형도 영영 떠나가고 말았다. 꿈을 실은 결혼청첩장을 보내오던 젊은 날의 옛 벗들, 지금은 죽음의 부고장이 되어 심심치 않게 날라 온다. 나의 종착점은 언제쯤일까. 결혼적령기가 있다면 사망적령기도 있어야 하지 않을까. 흙에서 나서 흙으로 돌아가는 이치야 누가 모르랴 만은 후회한들 무슨 소용이 있으랴. 이래서 인간은 어리석다 했던가. 그 날까지 얼마나 남았을까. 인명은 제천이라 아무도 내일을 예상할 수 없으나 바라기는 유언 같은 책 한 권만 더 남기고 가고 싶을 뿐이다.

저 바위아래 줄지어 밀려오는 파도는 크고 작은 바위에 부딪혀 산산 조각이 나면서도 끊임없이 오고 또 온다. 이것이 불굴의 도전이라고나 할까. 그래서 자연은 인간의 지혜의 스승이라 했던가. 마지막 손가락이 숨 쉬는 그 순간까지 도전하며 가야하지 않을까. 저 멀리에 그림 같은 배 한 채가 외롭게 떠있다. 인생도 그 끝 날에는 이렇게 혼자 가는 것이리라. 야자수 향을 따라 뒤돌라 오노라니 짧은 시어가 떠오른다.

사는 길이 높고 가파르거든/ 바닷가/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를 보라/ 아래로 아래로 흐르는 물이/ 하나되어 가득히 차오르는 수평선/ 스스로 자신을 낮추는 자가 얻는 평안이/ 거기 있다./ 사는 길이 어둡고 막막하거든/ 바닷가/ 아득히 지는 일몰을 바라보아라.

(시가 있는 아침 / 바닷가에서 / 오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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