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1-09-30 10:40
맑은 물을 만드는 프랑크톤처럼... - 황광석 동북아평화연대 사무총장
 글쓴이 : 홍보팀
조회 : 4,720  

동북아평화연대(이하 ‘동평’)가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재외동포사업국에서 분리 독립하였던 때가 2001년 10월이니 올해는 벌써 창립 10주년이 된다. 지난 10년을 돌이켜보면 그저 아득하기만 하다. 그래서일까 지난 설날이 있던 토요일에 출발하여 3박4일간 20명을 모시고 다녀왔던 연해주탐방은 나로선 10년의 궤적을 다시금 돌아보게 하는 여행이 되었다.

유난히 추웠던 올해 겨울은 한반도 전역을 꽁꽁 얼어붙게 만들었다. 러시아 연해주에 상주하는 동평 활동가와 통화해보니 아침기온이 영하 40도란다. 영하 40도면 외부활동은 거의 불가능할 지경이다. 뜨거운 물을 공중에 훅~ 뿌리면 수증기가 금방 얼어 눈이 되어 떨어질 정도이니까. 하지만 막상 우리 일행이 떠날 즈음인 설날연휴부터 동장군이 고향 시베리아로 설 쇠러 갔는지 거짓말같이 포근해졌다.

비행기로 인천공항을 출발한지 2시간 반 만에 러시아 블라디보스톡공항에 도착했다. 비행기는 서해바다로 나가 중국 심양과 만주 상공을 거쳐 북한을 저 멀리 에둘러 돌아가는 안내화면이 모니터로 보인다. 북한 영공을 통과하였다면 1시간 반 정도면 충분했으리라.

10년 전에 탔던 비행기도 북한을 빙빙 돌아서 갔다. 달라진 것이 없다. 달라진 것이라면 그때는 객실이 절반 이상 텅 비었었는데 지금은 빈자리 하나 없이 만석이다. 주당 비행 횟수가 두 배로 늘어났음에도 말이다. 한국과 러시아 연해주의 교류가 그만큼 활발해졌다는 증거다.

이번 연해주탐방단은 <크리스천 리더스 아카데미(CLA)> 1기생들의 해외탐방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이루어졌다. 여행은 견문을 넓히는 가장 좋은 방법 중 하나다. 그리고 낯설은 곳으로의 여행은 자신을 돌아보게 하고 새로운 아이디어와 기회를 발견하게 한다.

인솔을 담당한 나의 임무는 그분들의 소중한 시간을 알찬 경험으로 가득 채우도록 돕는 것이다. 이번 연해주탐방단의 목적은 첫째 발해와 항일독립투쟁의 현장 연해주를 발견함으로써 우리의 뿌리를 인식하는 것이다. 두 번째 그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우리동포 고려인들의 삶을 느껴보는 것이다. 세 번째 연해주의 경제현황을 개략적으로나마 파악하고 교류협력 활성화의 물꼬를 트는 것이다.

눈 덮인 지평선이 끝없이 펼쳐져있는 연해주 벌판을 접하는 일행들은 이렇게 넓은 땅이 절반도 채 경작되지 않고 있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2009년 한국정부기관에서 실시한 연해주토지조사보고서에 의하면 연해주의 농지를 개발하면 한국 가용농지의 3~4배에 달한다고 한다. 현재 한국의 식량자급율은 25%에 지나지 않고 쌀을 제외하면 5%대라고 한다. 대부분 미국과 남미 등지에서 수입하는데 식량안보 측면에서 연해주는 최적의 대안이 될 것이다. 몇 년 전부터 국제곡물가격이 등락을 거듭하며 수급이 불안정했다. 그래서 2~3년 사이 한국기업들의 연해주 진출이 부쩍 늘었다. 통일을 고려한다면 연해주의 농지확보는 매우 시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남한의 기술과 자본, 북한의 노동력, 러시아의 행정지원 등 남북러농업협력이 이루어진다면 삼국 모두 윈윈하는 최적 모델이 될 것이다.

연해주 제2의 도시, 우수리스크시에 있는 고려인문화센터 강당에서 열린 설날맞이 고려인잔치마당은 우리 일행들에게 한민족으로서 자부심을 느끼게 했다. 소련의 와해로 인하여 1990년대 중반부터 중앙아시아로부터 재이주한 고려인들이 불과 15년 만에 연해주에서 가장 존경받는 소수민족이 되었음을 잔치를 통하여 확인하였기 때문이다. 강당을 가득 메운 250여명의 하객들은 우리 돈으로 6만원에 달하는 비싼 참가비를 내고 참석하였다. 하객들은 고려인이 절반이고 나머지 절반은 러시아인과 다양한 소수민족들이었다. 아리랑예술단 등의 설날 축하공연 사이사이 김니꼴라이 고려인단체장의 기념사와 연해주정부 관리, 우수리스크시의장, 이인제 국회의원 등 내외빈들의 축사가 이어졌다. 우리 일행이기도 한 이인제 의원께서는 한국과 연해주가 이웃사촌임을 강조하며 한국과 연해주의 교류협력의 활성화를 다짐하였다.

10년 전, 난민과 같은 처지에 놓인 어려운 고려인동포들을 위해 긴급생활구호자금을 한국시민들로부터 모금하여 지원하였던 기억이 아련하다. 2003년부터 고려인농업정착자활사업을 본격적으로 펼치면서 지금은 연인원 230여 가정이 직간접적으로 관계하며 자활의 꿈을 기르고 있다. 성공한 고려인기업인들도 속속 등장하고 시의원, 학교선생님 등도 많이 배출하였다. 2009년 10월에 준공한 고려인문화센터가 고려인들의 중심센터로 훌륭하게 자리잡고 하루에도 300명 이상의 고려인들과 러시아인들이 이용하는 건물이 되었다고 한다. 우수리스크시장이 농담으로 우수리스크시문화센터가 고려인문화센터 때문에 문을 닫을 지경이라고 엄살을 피웠다고 한다. 참으로 고맙고 반가운 일이다. 동평이 고려인동포들을 위해서 노력해왔던 자그마한 결실이 맺어지니 가슴 뿌듯한 큰 보람을 느낀다. 연해주 고려인동포사회가 10년 동안 참 많이 발전했던 것이다.

구한말 1860년대 농업기근과 가렴주구를 피해 두만강을 넘어 최초로 해외 이주해간 동포가 바로 고려인이다. 러시아군대도 식량을 보급해줄 파트너로 고려인들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 1900년대 들어서며 일제의 침탈야욕이 가속화되자 항일독립투쟁을 위하여 많은 조선사람들이 연해주와 만주로 망명을 하였다. 최재형, 이상설, 홍범도, 안중근 등 기라성 같은 독립운동가들이 조국의 독립과 고려인동포사회 발전을 위해 노력하셨다. 우리 일행은 이상설 유허비와 최재형 생가, 최초의 임시정부인 대한국민의회 사무실 등을 돌아보며 날이 풀렸다곤 하나 매서운 추위와 바람을 두꺼운 옷으로 여미고 악조건에서도 독립운동을 하셨던 선조들을 생각하였다.

발해 외성에 올라가 망망무제로 펼쳐진 벌판을 내려다보며 호령했을 천 년 전 발해군사들을 상상해보았다. 러시아는 자신들의 유적이라 생각지 않는 지 발해성을 가로질러 도로를 내는 등 전혀 보존조치를 취하지 않는 것을 보고선 일행들이 혀를 찼다. 우리 역사는 우리가 지켜내야 하는데 고려인들의 처지가 곤궁하니 그들은 어쩔 수 없다 하여도 한국정부가 아무런 노력을 않고 있다는 것은 매우 아쉬운 일이다.

블라디보스톡은 ‘동방의 진주’ 혹은 ‘동방의 나폴리’라고 불리울 정도로 아름답고 천혜의 항구도시이다. 해발 214m인 독수리전망대에서 내려다보면 블라디보스톡항구는 마치 어머니의 자궁처럼 생겼다. 외해에서 아무리 폭풍이 몰아쳐도 블라디보스톡항은 잔잔하단다. 더구나 얼음이 얼지않고 수심이 깊어 큰 배가 손쉽게 정박할 수 있기 때문에 러시아가 블라디보스톡항을 얻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기울일만 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내년 2012년에는 블라디보스톡 루스키섬에서 APEC정상회의가 개최된다. 행사준비를 위해 180억불을 투자하여 도로, 항만, 공항, 호텔, 대학, 메디칼센터 등 곳곳에서 건설이 한창이다. 그중에서도 눈에 확 띄는 것은 블라디보스톡항을 가로질러 루스키섬까지 건설되고 있는 대형 연륙교이다. 연해주가 시베리아처럼 ‘잠자고 있다’가 웅비의 나래를 펼치는 듯 웅장한 기세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일행들 중 이인제 국회의원과 권기식 인간개발연구원장, 나현 서울시의사회 회장 등 몇 명은 연해주정부 대외정책담당 제1부지사와 사회보건담당 부지사를 만나러 갔다. 한ㆍ연해주친선협회를 설립하기 위한 것과 내년도 대규모 구매통상사절단의 파견을 협의하기 위해서였다. 1시간 동안 진지하게 협의하여 한ㆍ연해주친선협회를 3월중에 발족하는 것으로 합의하였고 2월말에 메디컬센터 건립을 위해 연해주 부지사들이 한국을 방문할 때 적극 협조하기로 하였고 또한 한국수입업협회 구매통상사절단의 연해주 방문을 적극 협조하기로 하였다. 마치 서로 간에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일사천리, 이심전심으로 마음이 통했다.

3박4일간의 연해주탐방을 통해서 지난 10년간을 돌아보면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하지만 많은 한국의 후원자들의 도움과 고려인동포사회의 자활노력과 동평의 활동가와 회원들의 열정들이 모이고 쌓여 결코 가볍지 않은 성과를 이루어내기도 하였다. 수심 40미터 아래 100원동전의 이순신장군 얼굴이 보일 정도로 투명한 바이칼 호수물이 그토록 맑은 이유는 수많은 프랑크톤이 불순물을 정화해내기 때문이란다. 많은 사람들의 땀과 노력을 매일매일 쌓아가노라면 세상은 그만큼 더욱 아름다워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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