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1-09-30 10:47
나는 지금이 행복하다 - 박춘봉 부원광학 회장
 글쓴이 : 홍보팀
조회 : 4,563  

“성공은 가치 있는 삶의 목표를 미리 정하고 그 목표를 점진적으로 실현해나가는 과정이다” LMI를 창시한 ‘폴 J 마이어’ 의 말이다. 자신의 인생은 자기가 설계해서 하나하나 단계를 밟아 나아가는 것이 순조로운 인생항로라는 말이다. 그런데 사람이 살면서 부닥치는 현실이라는 벽으로 인해 자기가 꿈꾸고 계획한대로 살아가기가 어렵게 전개되는 것이 인생항로가 아닌가 싶다.

내 지나온 삶의 역정을 보면 인생의 전환점들이 내 자신의 의지보다는 타율에 의하여 바뀐 것 같은 느낌이 많이 들기 때문이다. 인생 70고비를 넘기고 80을 바라보는 나이에 지난날을 되돌아보니 사람의 한평생이라는 것이 운명인지 팔잔지 하는 게 있는 것 같기만 하다는 이야기가 된다.

내가 보냈던 10대는 2차 대전 말기의 어려움과 6.25전쟁 전후의 혼란기여서 극심한 가난과 부도덕이 판치던 시절이었고 나는 돈도 권력도 배경도 없는 어려운환경의 중심에 있었다. 당시는 한치 앞의 미래도 예측하기가 어려운 세상이여서 미리 인생을 예측하고 설계를 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나는 우리들 세대가 그랬던 것 것처럼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논산훈련소에 들어가게 되고 육군소위로 임관을 하게 되었다. 이 시기에는 우국충정이나 애국심에서 군에 입대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도 많이 있었다. 할 수 있으면 군에 안 가는 것이 좋고 가더라도 후방 편안한 곳에서 군무를 마치기를 바라는 것이 보통사람들의 바램이었다. 나는 논산훈련소에서 훈련 중에 우연히 옆에 있던 친구의 권유로 갑종간부후보생 시험에 응시하게 되었다. 그런데 응시를 권유했던 다른 친구들은 안 되고 나만 합격통지를 받아서 논산 훈련소에서 바로 광주에 있는 육군 보병학교에 입교를 하게 되었다.

내가 미리 의도하고 준비했던 일이 아니니까 장교가 되어야겠다는 목표의식이 없이 보병학교에 입교를 하게 되었던 것이다. 보병학교 교육과정이란 것이 짧은 기간 안에 장교를 육성하는 과정이기 때문에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엄격하고 강력한 단련을 압축해서 시키는 훈련과정이다. 이런 훈련이 마음의 준비가 안 된 내게는 정말로 견뎌내기가 힘들었다. 그 때 누가 내게 “퇴교하겠느냐”고 물었다면 “예 그러겠습니다” 하고 퇴교를 희망했을 것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무척이나 철없고, 부끄럽게 생각되는 일이 기억나서 그 이야기를 옮겨 보려고 한다. 훈련이 중반쯤 지났을 때에 특무대 면접관으로부터 무슨 목적인지는 몰라도 훈련 중인 후보생 개인별 면접이 있었다. 이러저러한 질문이 끝나고 “존경하는 사람이 누구냐”고 묻기에 “그룬드비히를 존경 합니다” 라고 했더니 그게 누구냐고 해서 덴마크의 교육자라고 대답했다. 그랬더니 “우리나라 사람 중에서는 누구를 존경하느냐”고 해서 이순신 장군이라고 했다. 그 답변에 조금은 히스테리칼 하게 “지금 살아있는 사람 중에서는 누구냐”고 했다. 이쯤 되면 정답은 알만한데 “지금 살아있는 사람 중에서는 우리 어머니를 존경 합니다”라고 대답한 것이다. 이 양반 많이 날카롭게 “알았어요.” 라고 하면서 면접을 끝냈다. 이런 마음상태이니까 기록상의 성적이 좋을가 없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있는 선착순 구보는 늘 후순위였고 남들은 잘 견뎌내는 것 같은 내무반 생활도 내게는 많이 힘들었다.

전반기 10주과정을 마치자 포병학교 14주과정은 많이 달랐다. 지나간 10주가 아까워서라도 낙제는 면해야겠다는 마음의 다짐이 있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세상만사 마음먹기 달렸다는 말이 생각나게 하는 대목이다. 거의 매일 반복되는 싸락눈 깔린 연병장을 팬티바람으로 포복하게 하는 단체기합(얼차려) 정도는 별로 힘들이지 않고 받았던 기억이 추억으로 남아 있다. 아무리 힘든 과정이 있어도 해내야겠다는 마음가짐 덕에 포병학교는 꽤 좋은 성적으로 졸업을 하게 된다. 사격지휘나 측지(測地)같은 과목은 상당히 재미있기도 했다.

그런데 임관식을 마치고 육군소위 계급장을 단 동기생들은 그렇게 좋아 할 수가 없어 보이는데 정작 나는 좋은 줄을 모르고 무덤덤하게 그 감격의 순간을 보냈다. 내가 꼭 장교가 되어야겠다는 목표의식 같은 것이 없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내 지나간 역정에 후회스러운 일이 더러 있기는 해도 명예스러워야할 이 임관의 시점을 무덤덤하게 보낸 일이 제일로 부끄럽고 후회스럽다. 자기 자신의 진로에 대한 야망이나 목표를 자기 스스로가 세워서 실행해 가야 인생의 순간순간이 보람도 있고 감동도 있을 터인데 그런 것 없이 엄청난 인생의 전환점을 맞게 되었으니 무덤덤한 것도 당연하지 않았나 싶다. 그래도 “장교는 국제 신사다, 일 거수 일 투족을 신사답게 처신 하면서 살아야한다”고 일러준 당시 교관의 말씀은 늘 마음속에 강하게 각인되어 있어서 내 삶에 큰 지렛대가 되어 주었다. 고된 훈련과정에서 얻은 천금 같은 수확이 아닌가 싶다.

포병장교가 임관 후에 최초로 받게 되는 보직이 전방 관측장교이다. 나도 처음 3명의 관측병과 함께 전방 관측소(OP)근무를 하게 되었다. 어느 날 아침 일직 병사들이 킬킬대면서 손에 뭘 잔뜩 들고 OP로 들어왔다. 뭐냐니까 내 놓는 것이 담배꽁초였다. 이게 웬 것이냐고 하니까 보병들 화장실에 가서 주워 왔다는 것이다. 이 당시는 장교와 사병 모두에게 하루에 화랑담배 열 개비씩이 보급되었는데 OP에 보급되는 담배 모두를 안주니까 꽁초를 주워 와서 피운다는 것이다. 젊은 생각에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우선 장교인 내 것은 올려 보내게 해서 병사들에게 나눠 줬다. 나중에는 이것이 계기가 되어서 홧김에 나도 담배를 피우게 된다.

이때는 쌀이나 부식은 말 할 것도 없고 돈이 될 만한 것은 정량보급이 안 되는 것이 다반사였다. 병사들은 후생사업이라고 이름 부쳐진 대대장이 하는 화목장(火木場)에, 연대장이 하는 숫굴에 파견 근무를 시켰고 일부는 주 부식을 착취하기 위해서 휴가를 보내기도 했다.

당시 김종필 전총리가 조선일보와 대담(2011. 05. 11)한 내용은 아주 재미있으면서 이 시기를 잘 설명해 준다. “그 당시 장군들을 '똥별'이라고 불렀다면서요?”. 라고 하는 기자의 질문에 김 전 총리는 "정군대상으로 추려진 장군들은 전쟁 중에도 공병들의 불도저·GMC트럭을 빼돌렸고, 전방 진지에서 소나무 베어 후방 제재소에 팔아먹고, 병사들 휴가 보내면서 쌀 빼먹고 그랬어요. 별을 달고 도대체 독도법(지도 읽는 법)을 몰라요. 5만분의 1 지도에서 간격이 몇 개면 거리가 얼마다 하는 것을 몰라요." 라고 말했다.

사실 그러했다. 내가 소위임관 후에 전방부대로 배치 받아서 가니까 일반 장교들 중에는 ‘CONFIDENTIAL’의 스펠링을 잘 모르는 사람, 그리고 포병장교면 반드시 이해해야 하는 사격지휘나 측지에 쓰이는 삼각함수나 10을 바탕으로 하는 상용대수의 원리 잘 모르는 들도 더러 있었다.

이 시기는 사회도 부패되어 있기는 찬 가지였다. 정치권에서는 민의(民意)라는 명목으로 우의(牛意) 마의(馬意)가 동원된 사사오입개헌으로 3선을 획책하고 부정선거가 노골적으로 횡행하던 세상이었다.

사회 구석구석이 부패의 늪에 빠져있었다. 공직자들이 불법적인 금품수수행위를 해도 도덕적으로 지탄받는 세상이 아니었다. 부패가 하나의 문화처럼 자리를 잡고 있었다. 당시 쥐꼬리만 한 봉급으로 생활을 해야 하는 공무원들은 생계형으로 부정을 할 수밖에 없는 세상이었다. 하다못해 동사무소 직원에게도 담뱃값이라도 줘야 일처리가 원활 했다. 교통순경이 길거리 위반사범을 잡으면 한 푼이라도 받고 놓아주는 일이 상식처럼 통하던 세상이었다.

당시 군대와 사회상을 언급하다 보니 다소 오해의 소지가 있을 것 같아 하는 말이지만 그런 대한민국이 오늘날 여기까지 오는데 에는 이 어려운 시기를 살아낸 우리의 선배들의 눈물겨운 삶이 있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될 일이다.

사람은 나이가 들면서 세월 따라 성장 하도록 되어 있나보다. 공조직에서는 의무적으로 직급에 상응하는 보수교육을 받게 한다. 장교는 의무적으로 위관장교 때에는 초등군사반교육, 고등군사반교육을, 그리고 영관장교 때에는 육군대학과정, 국방대학원과정 등의 보수교육과정을 거치게 된다. 나는 이렇게 중간 중간에 이수하게 되는 보수교육과정에서는 비교적 좋은 성적으로 졸업한 편이다. 그 단계별 보수교육은 당연히 사람을 조금씩 좋은 방향으로 발전시켜 가는 역할을 하게 된다. “사람은 세월 따라 성장해 간다”고 한 공자의 말씀이 아주 절묘하게 맞아떨어지는 것 같다. 공자는 논어에서 40이면 주관이 뚜렷해지고 50이면 하늘의 뜻, 즉 소명의식을 알게 되고 60이면 남의 말을 잘 경청할 수 있게 되고 70이면 매사를 마음이 시키는 대로 행동해도 법도에 어긋나지 않는다고 했다. 새삼스럽게 나는 이런 말씀을 하신 공자님이 존경스럽다.

나는 나이가 들면서 인생의 구비마다 이 사회에 내가 해야 할 역할이 무엇인지를 고민하고 사회에 긍정적인 역할을 하려고 애 쓰면서 살아왔다. 내 마음속에는 혹독한 가난과 견디기 어려운 고생을 숙명처럼 견뎌 내시는 어머님의 모습이 신앙처럼 각인되어 있었다. 내가 사람들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게 성숙해 가는 것이 어머님 효도하는 길이라고 다짐하면서 살아왔다. 그러면서 올바르지 못한 사회에 대해서 불만을 토로하는 피동적인 사람보다는 사회를 올바르게 바꾸어 가는데 내가 무엇을 할 것인지를 생각하는 긍정적인 사람으로 차츰 변해 온 것 같다.

이런 환경 속에서도 내가 군대 생활하는 가운데에 누렸던 대우는 내게는 좀 과분한 것이었다고 생각한다. 야전포병의 꽃이라고 하는 전방 포병 대대장의 임기 2년간을 성공적으로 마칠 수 있었고 10대 1의 경쟁률로 입교시험을 거친 육군대학도 1/4의 좋은 성적으로 졸업했기 때문에 국방대학원에도 들어갈 수 있었으며 또 거기서 좋은 사람들을 만날 수도 있었다. 국방대학원을 졸업한 덕으로 국방부에서 군 전력증강계획(속칭; 율곡계획)을 다루는 일도 할 수가 있었고 육군 교육 사령부 창설요원으로서 육군 최초로 무기체계 수명주기관리 모델을 정립하는데 중추적인 역할을 하기도 했다.

내 나이 48세가 되는 해에 24년간 입었던 군복을 벗고 사회 첫발을 내딛게 된다. 그러니까 공직사회에서 반평생을 보내고 사회에 첫발을 내딛은 것이다. 이 시기의 사회 주류인 3~40대 사람들은 우리나라의 어두운 시기였던 60년대 전후에 군대가 대단히 부도덕한 집단으로 보이던 시기에 군 복무를 마친 세대들이다. 이러한 군대를 체험했거나 그 경험을 전해들은 사람들이 군의 고급장교 출신에 대한 감정이 좋을 수가 없었다. 당연히 예비역 장교의 취업이 어렵고 사회적응이 힘들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내가 사회에 첫발을 디딘 때가 이런 시기였지만 나는 다행스럽게 좋은 사람들 만나서 큰 어려움 없이 사회에 적응을 해 나갈 수가 있었다.

성공은 달성하고자 하는 인생의 목표를 미리 정해두고 그 목표를 달성해가는 과정이라고 했다. 그런데 우리 세대가 겪었던 시대상황에서는 계획도 어려운 일이지만 계획된 목표를 의지대로 달성해 나가기도 쉽지가 않았다. 그러나 지금 세상은 자기 의지만 확고하면 좋은 계획을 세우는 일도 그것을 달성해 나가는 일도 예전에 비해서는 순조로울 수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것은 하고자 하는 본인의 의지에 달려 있는 문제인 것 같다.

내 지나간 시절은 부조리가 판치던 혼란스러운 세상이여서 부정의 늪에 빠질 수도 있었는데 오늘 같은 좋은 세상에서 긍정적인 생각을 갖고 살아 갈 수 있게 되었다는 것에 대하여 늘 감사드리면서 살아간다.

나는 어려웠던 시절에 군대생활을 함께했던 여러분의 도움이 있었기 때문에 건강한 오늘이 있다고 생가하면서 그들에게 감사하면서 살아간다. 그래서 현역이었을 때 도움을 받았던 선배나 동료들 하고는 지금도 기회 있을 때 마다 자리를 함께 하려고 노력한다. 전역이후 30년 동안 내가 사회에서 역할을 할 수 있게 기회를 준 여러분의 은덕도 잊을 수 없다. 나는 군 복무를 마치고 작은 중소기업체에 처음부터 이사(理事) 직급을 받고 입사를 했다. 여러 가지 우여곡절은 있었지만 좋은 분들 만나서 큰 어려움 없이 지낼 수가 있었다. 오늘의 내가 있기까지는 그분들의 협조와 사랑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 했었다고 생각 한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당시의 대표이사를 비롯한 여러분들께 늘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간다.

그리고 지난 5월 1일에 창립 20주년을 넘기고 작지만 강한 기업으로 당당하게 키워가고 있는 부원광학의 임직원여러분의 한결같은 사랑과 협조에 감사드리면서 살아간다. 내년이면 창립 10주년을 맞는 중국공장을 강한 경쟁력을 지닌 기업으로 키워 가고 있는 350명의 임직원여러분께도 감사와 치하의 말씀을 드린다.

여러분의 사랑이 있어서 오늘 행복하다는 말씀을 하고 싶다. 요즈음 “나는 지금이 행복하다”라는 말을 자주 한다. 지금 우리가 숨 쉬고 살아가는 세상은 참으로 좋은 세상이 아닌가? 서울의 공기 청정도가 제주도의 그것에 버금간다는 이야기가 믿기지 않겠지만 사실이다. 한강물에서 만들어낸 아리수의 수질이 음료수로서 전혀 흠결이 없다는 이야기, IT기술 세계No1! 경제력 세계10위권 등 이 모든 것들을 우리들이 만들어 낸 것이다. 이 말은 나도 이일에 상당한 역할을 했다는 말이다. 그래서 내가 지나간 세월의 어려움을 견뎌내고 이 세상에 긍정적인 일을 함께 하고 있는 것이 더할 수 없이 자랑스럽고 행복하다.

다시 한 번 가슴 펴고 당당하게 “나는 행복하다”고 외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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