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1-09-30 10:53
법정스님에 대한 추억 - 김도봉 득호상사 대표
 글쓴이 : 홍보팀
조회 : 5,304  

“프랑스 포도는 참 향기가 좋네요.”

약 20년 전쯤 1992년 가을이 깊어가는 날이라고 기억된다. 프랑스지사에 부임한지 2년 정도 지났을 무렵 파리 외곽에 ‘길상사’라는 절을 짓기 위해 법정스님께서 한두 번 다녀가시다가 교포 화가의 도움으로 파리 시내 아파트에 조그만 방을 얻어 한 달 가량 묵고 계실 때였다.

파리 불자회 회원들이 돌아가면서 주말에 스님을 모시고 가까운 관광지를 안내하기로 하였는데 나의 차례가 되어 아침에 스님께서 묵고 계시는 방문을 두드리니 잠깐 들어와서 차라도 한잔 하고 가자고 하신다. 행자스님이 차와 포도를 내어 놓았는데 차를 권하시면서 법정스님이 프랑스 포도는 특히 향기가 좋다고 하신 것이다.

약 2년 정도 파리에 와서 살면서 프랑스 포도가 달고 맛있다는 생각만 했지 향기가 좋다라는 생각을 전혀 하지 못한 나로서는 똑같은 포도를 놓고서도 느끼는 사람에 따라 이렇게 깊이가 다르다는 것을 깨닫게 했다. 차를 마신 후 우리는 파리에서 남쪽으로 약 2시간 정도 떨어져 있는 ‘퐁텐블로 궁전’으로 향했다.

차창 넘어 보이는 프랑스 시골은 평화롭기만 하다. 장 프랑수와 밀레의 ‘만종’이나 ‘이삭줍기’ 등의 작품 배경이 된 곳인 바르비죵의 드넓은 들판을 지나 우리는 목적지에 도착하였다.

본래 파리의 왕족들이 사냥을 즐길 때 묵었던 작은집을 프랑스와 1세부터 루이 16세까지 7대왕이 계속 건물을 추가한 궁전이다. 12세기에서 18세기 건축양식을 한눈에 볼 수 있고 나폴레옹도 이곳에 자주 머물렀다고 하며, 특히 산책을 즐기고 싶은 정원이 드넓게 잘 꾸며진 궁전이다. 역대의 왕들이 이곳을 사랑한 이유도 자연의 매력이 넘쳐흐르는 궁전이었기 때문이리라.

산책 중에 스님께서 프랑스 국민들은 나폴레옹을 어떻게 생각 하느냐고 물으셨다. 실제로 프랑스 사람들의 나폴레옹에 대한 자부심은 대단하다. 나폴레옹이 있음으로 해서 세계를 제패하였고 프랑스 국민들의 자존심을 드높인 영웅이라고 대분분 생각하는 것 같다. 나도 법정스님에게 만약 스님이 안 되셨으면 무엇이 되셨겠냐고 질문을 하였는데 스님께서 아마 법을 다루는 법관이 되었을 것이라고 대답하셨다.

스님을 가까이 뵈니 외로움과 청정함이 묻어나는 무엇인가 고뇌에 찬 느낌이었다. 화전민이 버리고 간 강원도 오두막에서 개울물 소리와 바람소리를 친구삼아 자신도 오두막처럼 간소해지기를 바라며 날마다 버리고 버릴 것을 기도한 스님. 밤이면 창문으로 별빛이 들어오고 개울물 소리가 베개가 되는 작은 오두막에서 스님은 햇차를 마시며 별을 보기를 좋아 하신다고 하셨다.

저녁에 스님의 강의를 들을 기회가 있었는데 스님은 우리가 참선하여 궁극적으로 나아갈 삶에 대해 말씀 하시면서 우리들의 목표는 풍부한 소유가 아니라 풍성한 존재라고 하셨다. 부피보다는 삶의 질을 중요시 여기는 삶이야말로 사람다운 삶이라 하시면서 스님은 우리에게 채우려 하지 말고 비워내라 하셨다. 스님은 어느 하나에도 얽매이지 않고 텅 비어 있어야 한다고 말씀 하시면서 ‘비움’이란 아무것도 없는 것이 아니라 무슨 일을 하되 얽매이지 않는 ‘의식’이 진정한 비움이라 하셨다.

어떤 종교 단체를 막론하고 시대와 후세에 모범이 된 신앙인들은 하나 같이 가난과 어려움 속에서 신앙의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었다고 하셨고 주어진 가난은 우리가 이겨 내야 할 과제이지만, 선택된 맑은 가난 즉 청빈의 미덕이라고 하시면서 풍요 속에서는 사람이 병들기 쉽지만 맑은 가난은 우리에게 마음의 평화를 이루게 하고 올바른 정신을 지니게 한다고 하셨다.

오늘과 같은 경제난국은 물질적인 풍요에만 눈멀었던 우리들에게 우리 분수를 헤아리게 하고 맑은 가난의 의미를 뒤돌아보게 하는 그런 계기가 된다고 하시면서 미소를 지으셨다.

프랑스 길상사도 절을 짓는데 전액을 희사하겠다고 하는 독지가가 있지만 그렇게 하면 마음의 청정한 도량을 만드는 의의가 없음으로 여러 사람들이 십시일반 조금씩 성금을 내서 절을 짓고 있기 때문에 시간이 걸리신다고 하시면서 다음해는 완성될 것이라 하셨다.

스님과 함께 짧은 여행을 하면서 나는 많은 것을 느꼈고 어떤 삶의 지표 같은 것을 가지게 된 것 같았다. 40대 초반에 만난 스님은 그 당시 지금의 내 나이 60대 초반이었을 텐데 20년이 지난 시점에 새삼 스님이 그리운 것은 가을이라는 계절 때문일까?

인간수명이 70~80세에서 요즈음 100세 시대로 변화됨으로 인하여 60세에 은퇴한 대부분의 우리 친구들은 갑자기 불어난 남은 여생 30~40년을 즉 노년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고심 중이다.

은퇴자의 유형에 4가지가 있다고 한다.

1. 나이를 잊은 탐험가형.

2. 편안하게 즐기는 전통적 은퇴 생활형.

3. 걱정하며 살아가는 근심형.

4. 질병에 시달리는 환자형.

과연 나는 어떤 유형에 속하며 어떻게 노년을 보내야 할까? 어떻게 하면 보람차고 아름다운 노후 생활을 할 수 있을까? 굳이 경제생활을 하며 돈을 벌 수 있는 일이 아니더라도 그동안 익히고 배운 지식과 노하우를 후배양성이나 가난한 사람들을 위하여 베풀 수 있다면 그러한 노후 삶은 보람차고 뜻깊은 일이 아닐까?

죽을 때까지 열정을 가지고 후학에게 가르침을 주시고 공부하고 싶어도 학업을 계속하지 못하는 청소년에게 끝없는 연민의 정을 보내시며 스님의 모든 인세수입을 상좌들에게 알리지 않고 가난한 학생들을 위해 베푸신 법정스님에게 노후생활을 어떻게 보내야 하는지 많은 것을 생각케 하며 깨달음을 갖게 한다.

“빈마음, 그것을 무심이라고 한다.

빈마음이 곧 우리들의 본 마음이다.

무엇인가 채워져 있으면 본 마음이 아니다.

텅 비우고 있어야 거기 울림이 있다.

울림이 있어야 삶이 신선하고 활기 있는것이다.”

- 법정스님 <물소리 바람소리> 중에서 -

법정스님 말씀처럼 텅 빈 마음이 되면 눈에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님을 깨닫게 되고 어떻게 사는 것이 가장 보람찬 삶인지 조금이라도 알 수 있을 것 같고 삶이 보다 더 신선하고 활기찰 수 있으리라. 이 가을에 법정스님에 대한 추억을 되새기면서 지나온 삶과 앞으로 가야 할 길을 곰곰이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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