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2-09-07 14:46
어느 판사의 눈물-이남옥 서울사이버대 교수 / 서울부부가족치료연구소 소장
 글쓴이 : 홍보팀
조회 : 3,840  

법원은 갈등을 겪는 사람들 간에 누구에게 잘못이 있는 지를 판단하고 잘못한 사람에게는 벌을 주고 피해를 보는 사람에겐 보상을 받도록 하는 곳이다. 그러나 부부의 갈등을 다루는 가사사건에서는 부부 중 누가 더 잘못을 했는지 가려내는 것이 어렵고 또 무의미하다. 각자의 행동을 보면 분명 문제가 있다손 치더라도 그 행동이 나오게 한 상대방에게 탓을 돌리기 때문에 양쪽 이야기를 듣다보면 누구의 잘못이라고 판단하기 어려운 상황이 된다. 필자도 서울 가정법원에서 7년째 조정위원으로 일하면서 부부의 유책을 찾는 일이 얼마나 무의미한가를 실감하고 있다.

법원을 찾는 당사자들은 법원이라는 거대한 실체 앞에, 또 높으신 판사님들 앞에 주눅 들어 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판사님들이 올바른 판단을 해줄거라고 기대한다. 판사의 판결이야 말로 가장 공정할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공정한 판사님들이 자신 같은 억울한 처지를 잘 이해하고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 판결을 낼 것이라고 생각한다. 양쪽이 같은 기대를 가지고 자신의 입장에서만 이야기하기 때문에 듣는 상대방은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해결되지 못할까봐 긴장하고 두려워하기도 한다. 어쨌거나 법원의 소송과 판결까지의 과정은 매우 경직되어 있고, 소송 당사자들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스트레스를 받는다.

가정법원의 소송사건들은 바로 판결이 나는 것이 아니라 조정이라는 절차를 거치게 된다. 두 당사자의 의견을 충분히 듣고 그들이 원하는 최선의 해결책을 스스로 찾게 도와주는 과정이다. 판사의 최고의 판결보다 당사자들의 최악의 조정이 더 낫다는 말이 있다. 그만큼 당사자들 스스로의 판단과 해결이 결정에 대한 실천을 위해서는 더 강력한 힘을 가지기 때문이다.

그 부부도 매우 긴장한 채로 법원을 찾았다 그들의 분쟁사유는 아이의 양육권문제였다. 그들은 부부불화를 겪다가 이혼을 했다. 부인은 남편과 떨어져 살고 싶은 생각에 무조건 남편의 모든 요구를 다 들어주겠다고 했었다. 그 중에는 아이의 양육권 문제도 있었다. 남편이 아이를 키운다고 했고 행여 부인이 키운다고 하면 갈등이 더 커질까봐 그냥 들어주었다. 사실 남편이 아이를 키울 만한 상황이 아니었다. 양육권을 지정 받은 남편은 아이를 자신의 어머니에게 맡겼다. 아이를 찾는 횟수는 겨우 한 달에 한번정도 밖에 되지 않았다. 시어머니가 돌보는 상황에서 부인은 아이를 자주 찾아 갈 수가 없었다. 갈등의 원인에는 고부 갈등도 있었기 때문에 시어머니를 만난다는 것은 부인에게 매우 두렵고 거북한 일이었다. 그러나 아이와 헤어져 있는 기간이 길어지다 보니 부인은 아이가 너무 그리웠다. 아이를 영영 못 보게 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두려움에 뭔가 조치를 취해야만 했다. 기댈 곳은 법뿐이었다. 법적으로 자신은 아이의 엄마이고 엄마로서 자녀를 돌보는 것은 의무이자 권리이므로 법은 자신의 편을 들어 줄 것 같았다. 법원에 소장을 내고 남편이 양육자로 부족하다는 것을 최선을 다해 입증하였다. 또 자신이 엄마역할을 잘할 수 있다고 힘주어 강조하였다. 판사가 자신의 이야기를 들으면 바로 양육권을 엄마에게 변경해 줄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이 문제는 법을 통해서도 그리 녹록하게 해결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이 문제는 법과의 싸움도 아니었고 또 판사가 납득한다고 해서 자신의 편을 들어주는 것도 아니었다. 여전히 지긋지긋하게 느껴지던 남편과의 싸움의 연장이었다. 남편은 부인의 소장을 전달받고 펄펄 뛰었다. 그동안 잠잠했던 부인이 일일이 자신의 아버지로서의 부족함을 지적하고 비난하고 나오는 것에 매우 분노했다. 어머니가 아이를 키워주고 계시지만 본인도 자녀를 키우는 문제로 여러모로 무척이나 힘들었다. 어머니께 맡겨 놓긴 했지만 자주 찾아뵙지 못하는 것도 죄송했고 또 아이에게도 미안했었다. 혼자 아이를 키우면서 억울하기도 하였고 아내가 원망스럽기도 했다. 그런데 이제 와서 시시콜콜 자신의 양육에 대해 비난하고 나오는 아내가 너무 미웠다. 이혼 후 한동안 잠잠했던 부부싸움이 다시 불붙는 듯했다. 남편은 답변서를 통해 자신의 입장과 아내의 문제점을 일일이 지적하고 나왔다.

판사는 이 싸움이 시간이 지날수록 자녀의 양육권 변경이라는 본질을 떠나 또 다시 부부싸움으로 되가는 것을 안타깝게 바라보았다. 그들은 정작 아이를 위해 두 사람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는 고민하지 않았고 서로의 잘못만 들쳐 내기에 급급했다. 그런 부부를 바라보면서 아이가 너무 안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의 의견도 중요하다는 생각에 판사는 아이를 불러 누구와 살고 싶으냐고 물어보았다. 정작 아이의 대답은 엄마도 아빠도 아닌 지금까지처럼 할머니와 계속 살고 싶다는 것이었다. 이것은 또 다른 측면이었다. 지금까지 아이와 애착관계가 형성 되어있는 사람은 할머니였던 것이다. 누가 양육권을 가져야 할지 미궁에 빠지는 느낌이었다.

부부의 양육권 분쟁은 부부 분쟁의 연장이 되어가며, 시간이 흐를수록 더 날카로와졌다. 결국 남편도 아이를 데려가라고 소리 지르고 또 아내는 아내대로 남편에 대한 비난에 한 치의 양보도 없었다. 그 사이에서 엄마 아빠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두려움에 떨고 있는 아이의 얼굴을 보며 판사는 마음이 너무 아팠다. 아이가 너무 가여웠다. 판사는 싸우는 어른들을 모두 내보내고 아이만 남게 하였다. 그리고는 아이를 꼭 안으면서 “아가야 어른들을 모두 대신해서 내가 사과할게. 미안해 네게 이런 아픔을 겪게 해서 정말 미안해.” 라고 말했다. 그러자 아이는 눈물을 터트리며 엉엉 울기 시작했다. 판사는 한참 후에 엄마를 들어오게 했다. 엄마에게 아이의 상황을 이야기 하려하니 판사 역시 목이 메었다. 판사가 목이 메여하는 것을 보자 엄마도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판사 역시 엄마구나.’ 엄마의 마음으로 자신의 자녀를 염려하는 것이 너무나 감사하고 감동적이었다. 부인은 그제야 자신들의 부부갈등이 아이의 행복을 위한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문제는 의외로 쉽게 풀리기 시작했다. 아이는 우선 할머니에게 머물기로 했다. 그러나 엄마의 존재를 알리고 사랑을 전달하기 위해 매일 찾기로 했다. 고부간의 갈등이나 부부갈등을 피하기 위해 아이를 돌보지 않는다는 것은 비겁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남편에 대한 비난도 더 이상 필요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오히려 남편의 존재가 아이에게 얼마나 중요한가를 알게 되고 남편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이런 부인의 변화는 남편의 감정을 움직였다. 더 이상 싸움의 상대를 잃어버린 듯한 기분을 갖게 했다. 한없이 꼬여 가던 문제가 참으로 맥없이 풀려갔다. 변화의 시작은 판사의 눈물이었다. 백 마디 옳은 말보다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한 방울의 눈물이 사람을 움직이고 갈등을 해결한다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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