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2-09-07 14:51
병상에서-임종렬 서양화가
 글쓴이 : 홍보팀
조회 : 3,382  

1989년 8월, 지병이던 척추 수술을 받고 난 뒤 나는 뜻밖의 후유증으로 오른쪽 다리가 마비되었다.

수술을 하고 물리치료를 받은 지 넉 달째 되던 날, 그날도 나는 물리치료와 운동에 지친 몸으로 침대에 누워 끝없는 상념에 젖어 있었다. 초겨울의 창밖은 회색빛으로 우울하였다.

나는 문득 `이런 때 첫눈이라도 내려 준다면...` 하는 생각을 하며 창밖을 보고 있었다. 첫눈이 내려 준다면 금방 마비된 다리가 살아나 일어설 것만 같은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한여름의 지열을 받으며 입원을 했고 어느 사이 짙푸르던 앞산에 가을 옷도 갈아 입혔다. 이렇게 첫눈을 기다리는 겨울이 되도록 엄마를 그리며 외로이 지내고 있을 두 아들과, 병중의 아내와 집안일과 회사일에 역부족일 남편, 그 모든 일을 멀리 잊은 채 첫눈을 기다리는 감상에 빠져있다니. 그러나 나는 창밖에서 무엇인가를 간절히 찾고 있었다.

예측할 수 없는 앞날에 대한 불안과 가족에 대한 미안함, 실로 오랫동안 나에게서 떠나지 않았던 통증, 이 모든 것을 견딜 수 없어서 나는 화장실에 들어가서 수돗물을 틀어놓고 얼마나 울음을 삼켰는지 모른다.

척추 수술 후 첫 진료를 받던 날, 나는 집도를 하여 주신 선생님께 약속을 했었다. 미련하게도 병을 키울 대로 키워 와 때늦은 수술로 다리가 마비되고 그로 인해 심려를 끼쳐 죄송하다고. 그러니 디스크로 고통받던 그 무서운 통증만이라도 없어진다면 다리 하나 불편한 것은 감수 하겠노라고 했다.

그러나 어느 때 기적처럼 나무토막 같은 다리에 힘이 생기고 목발을 던지고 혼자 걷는 날이 온다면... 그러한 날이 내게 온다면 나는 지금의 상황과는 다른, 화가로서의 아름다운 삶을 살리라는 꿈을 아무도 모르게 간직하고 있었다.

창밖 가파른 산 언덕에는 이름 모를 작은 나무 하나가 몇잎 남지 않은 빨간 잎을 떨구지 않으려는 듯 겨울바람에 떨고 서 있는게 보였다. 문득 O.헨리의 마지막 잎새가 생각났다. 저 나무도 나와 같은 소망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 때 나는 무게없이 하나 둘 내리는 눈송이를 보았다. 아! 첫눈이 내리고 있는 것이다. 나는 어느새 오른쪽 다리를 만지고 있었다. 첫눈이 오는데, 저 첫눈이 내게 무엇인가를 가져다 줄 지 모른다! 그것은 절망감 속에서 좌절하지 않고 힘든 운동을 계속해온 오랜 날들에 대한 보상이기도 했고 최선을 다하고 있는 의료진들에게 보내는 신뢰이기도 했다. 또한 끊임없이 보내주는 이웃들의 따뜻한 마음과 두 아들의 기도와 남편의 헌신적인 정성이 합쳐진 그 어떤 힘에 대한 기대도 갖고 있었다.

그 때 병실 문이 열리고 의사 선생님께서 들어오셨다. 선생님은 이른 아침에 수술을 끝내고 회진을 하러 들어오신 것이다. 그 분은 내 시선을 따라 앞산을 하얗게 덮어가는 눈발을 보며 오래 서 계셨다.

***의사선생님께서는 당신의 환자가, 가족에 대한 미안함으로 눈물을 흘리며 휠체어에 앉아서 먼 하늘을 우러르는 모습을 종종 목격했었다. 그 생각이 떠올라서 안쓰러운 마음 때문에 선뜻 진료를 하지 못하고 서 계시는 듯하였다.***

옆 침대의 환우가 선생님께 드리기 위해 끓이는 원두커피의 그윽한 향내가 온 병실을 채우고 있었다.

“첫눈이 어쩌면 저렇게 탐스럽게 내릴까요.”

의사 선생님은 혼자 소리로 말씀 하셨다.

그때 커피 향내 아닌 또 다른 신선한 향내가 코끝에 와 닿았다. 고개를 돌리니 거기엔 또 다른 눈송이들이 나를 보고 웃고 있었다. 빨간 잠바에 초겨울 바람을 묻히고 들어선 김간호사가 안개꽃 다발을 한 아름 안고 그곳에 서 있었던 것이다. 아들들에 대한 폭포 같은 그리움으로 휠체어를 타고서 병원 복도를 서성이며 밤을 밝히던 나를 늘 따뜻한 시선으로 지켜주던 그이가 안개꽃을 안고, 안개꽃 보다 더 환환 미소로 서 있는 걸 보고 나는 왈칵 눈물이 났다.

바로 그 날부터 나의 마비됐던 다리는 아주 조금씩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두 달 후 나는 휠체어에서 일어나 보조기를 신고 목발에 의지하여 여섯 달의 병원 생활을 마치고 퇴원을 했다. 이제는 허리의 통증도 씻은 듯이 낫고 다리도 거의 정상으로 회복되어 가고 있다.

나에게 참으로 큰 선물을 안겨준 3년 전의 그 첫 눈! 나는 그 첫눈이 내리던 날의 정경을 아름다운 한폭의 수채화로 내 가슴 속에 영원히 간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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