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2-09-07 14:58
실한 공직생활 후에 오는 뿌듯함-이보규 21세기사회발전연구소 소장
 글쓴이 : 홍보팀
조회 : 3,795  

지난 구랍에 서울시 산하에서 근무하다 퇴직한 전직공무원들의 모임인 S구 친목단체 정기총회에 참석했었다. S구를 개청할 때 준비 반장으로 시작해서 초대 총무과장으로 일했고 다시 총무국장을 근무해서 승진의 발판이었고 오랜 세월 근무했던 나로서는 다른 어느 모임보다도 사랑하는 친목단체이다.

퇴직한 옛 동지들이 많이 모여 북적대고 성황을 이루고 있었는데 짐작컨대 전체 회원 수에 비하면 이날 참석 인원은 일부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모임 장소인 S동 주민 센터 3층 회의실에는 입추의 여지가 없어서 좌석이 모자라 밖에서 서성걸이는 동료들도 있었다.

단상 맨 앞자리에는 전구청장과 현직구청장 그리고 직전 구청장이 앉아 있었다. 구의회의장도 참석했고 지역출신 국회의원도 앞자리에 앉아 있었다. 퇴직했어도 옛날 현직 때 계급이 그대로 유지되고 있는 것 같았다. 어느 누구도 지정하지도 않았을 텐데도 공직을 퇴직하기 전 서열은 세월이 흘렀어도 앉아 있는 좌석으로 볼 때 그대로 존재하는 것이다.

구청장 퇴직자는 역시 구청장이고 국장 퇴직자가 아직도 국장이고 과장 퇴직자는 과장처럼 보였다. 나는 공직 후배가 회장으로서 잘 이끌고 있는 친목단체라 아무런 책임 역할이 없어 조금 늦게 도착하여 식사 때나 함께 어울리려는 속셈으로 조금 늦게 도착하니 행사는 이미 마무리 단계에 있었다. 회의가 끝나기를 기다려 나오는 옛 동료들과 반갑게 악수로 인사를 서로 나누었다. 언제나 친목 모임에 가서 보면 그래도 늘 참석하는 사람은 대부분 늘 정해 있는 것처럼 느꼈다.

나름으로 참석한 퇴직동료들을 살펴볼 때 첫째, 무엇보다도 자신이 건강해야 나오게 되고 둘째, 현직에 있을 때 부끄러운 일이 없어야 나오는 것 같았다. 셋째, 연금을 받거나 경제적으로 어느 정도 안정되어 있어야 나오는 것 같았다. 또한 들리는 이야기인즉, 현직에 있을 때나 퇴직한 후나 평판이 좋아야지 그렇지 않으면 스스로 친목 모임을 피한다는 것이다.

옛날 일이라 부질없는 이야기지만 재직 중에 악명(?)이 좀 높던 이가 있었다. 하부조직에서 표창대상자를 상신해 올리면 뻔뻔스럽게 당사자에게 직접 손을 내밀어 용돈 받아쓰려고 잔재주를 부렸고 감사부서에서 근무할 때는 인정사정없이 직원들을 달달 복가서 괴롭히는 일을 서슴없이 했는데 오늘날 퇴직자 모임에 얼굴을 볼 수도 없을 뿐 아니라 죽었는지 살아 있는지 도통 아는 동료도 없었다.

그런가하면 지난날 기관장을 역임하면서 너무 부하를 닦달하고 괴롭히기로 소문난 그이는 중간에 타의로 퇴직하게 되었다. 그분 퇴임식 날 “퇴임축하” 가소로운 축전도 받았다는 소문을 들은 바도 있었는데 그 후 지금까지도 그분역시 퇴직자 친목모임에서 모습을 볼 수가 없다. 천년만년 사는 것도 아니고 공직의 그 직책도 잠시 맡아서 일 할 뿐인데 하늘에서 특권을 받고 내려 온양 으스대던 못난이(?) 들이 오늘따라 생각난다.

또한 상시 쫄랑거리며 윗사람 비위나 잘 맞추고 소위 빽(?)줄로 요직만 골라 다니던 이도 있어서 퇴직 후 지금은 어떻게 지나는지 궁금하지만 퇴직 후에 종적을 감추고 시우회 가입도 하지 않고 동료들의 관혼상제나 여타 모임에서 얼굴을 볼 수 없는 이도 있다. 그런데 그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우연찮게 듣게 되면 나는 서글퍼진다. 인생이란 살면서 서로 만나고 헤어지고 하기마련지만 함께 있는 순간에 정성으로 대하고 본심에서 사랑으로 대해야 할진데 늘 상사 또는 부하라는 계급적이 배려보다는 인간적인 우호관계를 다져야 다시 만날 때 반갑고 떳떳하게 만날 수 있다. 지금이 순간의 만남도 역시 마찬가지라.

이날 행사는 비교적 간략하게 마치고 행사장 앞길 건너편 식당으로 모두 향했다. 대중음식점 삼계탕 집으로 이동해서 식탁에 들러 앉아 반주를 겸해 닭볶음탕으로 오찬을 먹게 되는데 둘러 앉아 있는 모습을 보니 세월이 흘렀어도 옛날모습은 그대로 남아있었다. 지난날 동고동락했던 동료들, 자세히 보니 머리카락이 많이 빠져 백발이 되고 얼굴에는 주름지고 검버섯이 피어 있는 모습이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최근 퇴직한 후배들은 아직도 건강한 젊음을 지니고 있어 얼마든지 열성으로 공무를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것으로 보였다.

그러기에 산술나이로 정년을 정한 정년퇴직이라 아쉬운 친구도 많으리라 생각하니 나이가 똑 같다고 육체적으로 건강상태가 똑 같은 것은 아닐 진데 이제 정년퇴임시기도 건강상태를 과학적으로 점검해서 하는 방법도 고려해 볼 일이 아닐까하는 부질없는 생각도 들었다.

이날 나는 넓은 식당 홀에서 참석자 대표로 건배제의를 하였다. 회장이 나에게 해 달라 지정해서 사양하다가 그만 일어나서 잔을 높이 들었다. “북한에 김정일 이가 죽는 것을 보니 누구나 병들면 다 죽습니다. 우리는 병들지 말고 아프지 말고 끝까지 죽지 말고 건강하게 오래오래 숨 쉬며 삽시다.”라고 덕담을 했다. 다른 멋진 건배사를 하고 싶었지만 오찬으로 대중식당에서 닭고기 먹는데 어울리는 간단하게 건배를 제의하며 목소리를 높였다.

그리고 앉다보니 옆자리에 K 전구청장과 직원과 국장이 한 식탁에 앉아 오랜만에 닭고기로 배를 채웠다, 어떤 사람은 밥을 우선 챙겨 먹으며 소주를 마시고 어떤 이는 막걸리와 맥주를 마시고  어떤 이는 손사래를 하며 한사코 사양하는 모습은 옛날과 조금도 다름이 없었다. 큰 소리로 먹기 전에 떠드는 사람, 조용히 식사만 하는 사람, 술을 권하는 사람 등 다양한 몸짓들이지만 역시 전직 공직자 모임이고 눈에 보이지 않는 서열과 계급의식이 회식 자리에도 잔존해 있는 것 같았다. 이제 이와 같은 계급의식은 시대정신에 따라 버려야 할 것이다.

하여간에 오랜 세월 공직으로 봉사하며 살아온 우리들이기에 퇴직했어도 몸에 밴 공직자였음을 숨길 수 없다고 하겠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공직의 체험이 부끄러운 점도 있었을 것이고 자랑스러운 점도 있었겠지만 분명한 것은 우리는 수도 서울현대사에 주역이었다는 사실은 명백할 것이다. 그러기에 자긍심도 있지만 기성세대로서 우리사회의 불미스러운 사건이 발생할 때면 남다른 책임감을 절실히 느낄 수밖에 없었다. 한 해를 마무리 하면서 하루지만 옛날 동료들 만나 추억을 더듬어 가며 친목모임에 참여한 일이야 말로 나 개인으로서 매우 행복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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