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2-09-07 14:58
중소기업 사장의 감투이야기-박춘봉 부원광학(주) 회장
 글쓴이 : 홍보팀
조회 : 4,296  

내가 공직생활 24년을 하고 사회에 나왔을 때는 내 나이가 꽉 찬 오십이었다. 사복으로 갈아입고 몸담았던 작은 기업의 중역을 하면서 내가 갖고 있던 퇴직 후의 그림은 아주 단순했다. 우선 환갑까지 직장에 몸담고 있으면 감사할 일이고 대부분의 정년퇴직을 한 동료들이 그러한 것처럼 나도 환갑 이후는 그냥 관악산 등산이나 하면서 소일 하자고 아주 단순한 그림을 그리면서 살아 왔다.

공직에 이삼십년 몸담았던 우리 또래의 사람들은 퇴직 이후에 받게 되는 연금이 노후에 최저 생활은 할 수 있는 수준은 되기 때문에 등산이나 하면서 보내는 것이 내 또래 사람들이 갖는 60이후의 그림이고 사실 또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

내가 공직이후 첫 직장으로 갔던 곳은 레이저 광학이라는 당시로서는 매우 난해한 기술을 국내에 정착 시키고 그것으로 고 부가가치를 창출하겠다고 설립했던 아주 작은 규모의 첨단광학 회사였다. 상당한 기간 동안 채산성을 맞추지 못하는 회사를 자력으로 설 수 있도록 채산성을 맞추게 하는 일이 가장 급하고 힘든 과제였고 그에 못지않게 힘든 일이 도대체 규모나 능력 면에서 힘에 벅찬 누가 봐도 쉬운 일이 아닌 방위산업체(방위산업체란 국방을 위해서 필요한 장비를 개발 생산할 수 있는 업체를 미리 정부가 지정하고 방산물자를 생산 하도록 정부가 육성 지원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방위산업체는 상공부장관이 국방부장관과 협의해서 지정하도록 되어 있었기 때문에 그 지정을 받는 절차가 매우 복잡하고 까다로워서 당시에 업체수가 80여개뿐이었고 현재도 80여개밖에 없다.) 지정을 받아야 하는 일이었다.

어려운 고비가 많이 있었지만 잘 극복하고 설립초기 몇 년간 적자 경영을 해오던 회사를 제 발로 갈 수 있도록 만들었고 소망하던 방위산업체 지정도 이루어 냈다. 뿐만 아니고 어렵게 만 보였던 중, 장기물량의 확보도 이루어 냈다. 일의 성격이 공직에서 하던 일과는 전혀 다른 생소한 일이고 예비역 장교에 대한 시각이 냉담했던 그 당시의 환경을 잘 이겨내고 이런 일을 이루어낸 것을 되돌아보면 지금 생각해도 가슴이 뿌듯해 온다. 이 시기에 했던 일 가운데 오래 간직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 퇴근 후에 포장마차로 몰려다니던 현장근로자들에게 진흥공단 연수원에 파견교육기회를 제공하고 독서를 권장 하는 등 자기계발 노력을 독려했는데 사원들이 그것을 잘 수용해 주었던 일이 지금도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다. 그래서 그때 함께했던 회사의 대표이사를 비롯한 몇몇 사람들을 생각 하면 지금도 온기 같은 것을 느낀다.

내가 퇴직해야겠다고 마음먹은 계기가 어렵게 중장기 방산물량의 수주가 이루어지고 그 일은 너무 규모가 큰 것이어서 내 능력으로는 관리할 수 있는 한계가 초과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새로운 사람에게 넘기고 나는 관악산 등산이나 해야겠다고 마음먹고 있었는데 예상하지 못했던 새로운 회사의 창업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갑자기 양이 제법 되는 중장기 방산물량의 수주가 이루어져서 민수물자인 복사기렌즈의 생산을 방산물자를 생산하는 라인에서 함께 해 나가기엔 원가구조의 문제 등 여러 문제로 어려운 상황에 이르렀다. 사람 십여 명이면 처리 할 수 있는 물량이었기 때문에 내게 새롭게 작은 회사를 만들어서 민수품인 복사기 렌즈만을 생산 하도록 해 보라는 것이었다. 사람이 살아가는 인생항로 라는 것이 자기가 미리 예측하고 계획하지 못하는 전혀 새로운 길로 가게 하는 팔잔지 운명인지 하는 것이 있는 것 같다.

주요생산 설비는 모기업에서 쓰던 장비를 이전 받아서 모기업에서 함께 근무하던 몇 몇 젊은 사람들의 도움으로 어려움 없이 회사를 창업하게 되었다. 10여명 되는 사람과 함께 그야말로 구멍가게처럼 창업 한 것이 91년 5월1일 이다. 갑자기 결정된 일이여서 사장인 내게 회사 경영에 관한 청사진이나 계획 같은 것이 있을 수가 없었다.

복사기렌즈는 모기업에서 하던 대로 생산해서 신도리코 나 제록스에 납품하는 일이여서 일은 어려움 없이 해 나갈 수 있었다. 별 어려운 없이 91년을 넘겼는데 92년 접어들면서 예기치 않았던 어려움에 봉착했다. 노태우대통령의 공약사업인 200만호 주택건설을 하면서 나라전체가 극심한 불황에 봉착 했었다. 그래서 복사기가 팔리지 않았던 것이다. 92년 하반기부터 93년 전반기까지 복사기렌즈 발주가 거의 없었다. 그러니 매출이 반감될 수밖에 없었다. 기업경영에 관한 사전 지식도 경험도 없는 나로서는 회사를 그냥 접고 문을 닫을까 하고 계산을 해봤다. 그때 회사의 규모로서는 내가 혼자 폐업처리를 해도 감당 할 만한 규모여서 한참동안을 고민을 했다. 그런데 그만해도 기업체의 사장인데 함께 했던 이십 여명 종업원의 눈을 보면서 어떻게 하더라도 이 고비는 넘겨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됐다. 그래서 은행대출 오천만 원씩 두 번에 걸쳐서 은행의 도움으로 92,93년의 위기를 넘길 수가 있었다. 이건 이후로는 운전자금을 차입 한 적은 없이 해 왔다.

제조업이라는 것이 참 재미있는 것이어서 이시기에 금성사로부터 팩시밀리 렌즈의 개발의뢰가 오고 그것이 순조롭게 진해되어서 회사경영에 큰 도움을 받게 된 이야기를 잠깐 옮겨본다. 금성사의 제안은 이러 했다. 수입단가 850엔인데 800엔에 맞출 수 있겠느냐는 것이었다. 팩시밀리렌즈는 예전에 헤 본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할 것 같아서 그러자고 했다. 거의 3개월 정도 걸려서 개발이 끝날 때쯤 되니까 일본에서 600엔에 공급이 가능하다고 하면서 거기 맞추라고 했다. 어렵게 하면 맞출 수 있을 것 같아서 그렇게 하자고 했다. 양산을 할 때쯤 되었는데 일본에서 380엔에 맞춘다고 하니 우리보고도 380엔에 맞추라고 했다. 참 허탈하기도 하고 섭섭하기도 하고 괘씸하기도 해서 안 하고 싶었다. 그런데 우리 현장 사람들의 이야기가 물량만 금성사가 제안했던 월 2만 대를 보장해 준다면 손해는 안 보고 해 낼 것 같다고 해서 그 일을 하기로 했다. 그때 회사 종업원 30명 정도의 사람들로 그 일을 해 내면서 어려움도 많이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회사가 자신감도 갖게 되고 경영에도 도움이 되었다. 대기업 금성사로부터 보잘 것 없는 작은 기업이 표창을 받는 영광도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이런 일이 작은 제조업의 어려움이고, 재미인 것 같다.

94년에 접어들면서 일본의 교세라 와 팩시밀리렌즈를 비롯한 다양한 일을 시작 하면서 매출이 가파르게 늘어났다. 뿐만 아니고 선진국의 현장문화, 현장기술, 관리기술을 체득할 수 있는 계기가 되면서 소위 국제 경쟁력 이라는 것도 체득하게 되었다. 이렇게 해서 전셋집도 면하고 내 공장을 마련해서 착실하게 착근을 하게 되었다. 교세라 와의 일화는 다른 기회에 별도로 정리할 생각이다.

회사 설립 십여 년 동안에 어려운 일도 많이 있었지만 장관표창 총리표창을 비롯해 대통령표창인 일천만 불 수출의 탑 도 받는등 정부로부터도 좋은 평가를 받았다. 2002년 중국공장 설립 시에는 일본의 광학회사가 출자(30%)를 해 주어서 큰 힘이 되었고 지금 중국공장도 착실하게 착근을 해서 회사의 경쟁력도 꽤 건실해졌다.

회사의 규모가 커가고 반듯한 고객과의 거래를 하면서 내 능력의 한계를 의식했기 때문에 매사에 겸손 하려고 노력을 해왔다. 그래서 대표이사인 내 자신 부터 공부를 열심히 하려고 노력을 했고 회사의 간부나 일반 사원들에게도 중소기업연수원에 파견교육을 시키고 독서를 장려하는 등 자기계발 노력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주는데 최선을 다 했다. 지금은 사원들이 읽은 독후감을 제출하게해서 나는 일 년에 한 번씩 그 독후감을 읽으면서 형언할 수 없는 행복감에 빠져들곤 한다.

94년도쯤에 어윤배 박사가 한창 활동하던 때에 숭실대학 중소기업대학원에서 하는 최고경영자과정이 중소기업 사장에게는 알맞은 교육과정이라고 누군가로 부터 소개를 받아서 일 년여를 재미있게 수강했던 기억이 새롭다. 그때 중소기업학을 한다는 어떤 교수님이 들려준 이야기에 많이 공감을 해서 지금도 그 말씀이 내게는 무슨 경구처럼 기억에 남아 있다. “중소기업의 대표가 기업경영에 전력투구를 해도 그 기업이 격렬한 경쟁 사회에 살아남기 어려운 세상인데 감투 쓰기를 좋아하는 사람을 보면 참 걱정스러울 때가 많이 있어요”

제조업을 하면 협력업체 모임을 비롯해서 여러 종류의 교류회, 협의회 협회라는 이름이 붙는 단체의 회원이 되기 마련이다. 과거 이력이 공직에도 있었고 작은 기업이지만 기업체의 중역 경력도 있고 하니깐 여려 협의회에서 회장감투를 써야 할 기회가 더러 있었다. 그럴 때마다 그때 그 교수님이 하던 말씀이 생각나서 한사코 그 자리를 사양해 왔었다. 오히려 나는 회사가 조금씩 커갈수록 내 능력의 한계를 느끼게 되어서 중소기업연수원을 비롯한 여러 곳에 다니면서 자질 향상을 위한 공부하는 일에 정력을 쏟아왔다. 그래서 이즈음부터 중소기업연수원에서 하는 최고경영자과정 교육을 수강하기도 하고 회사 간부들과 함께 당시 많이 유행했던 성공 철학 프로그램인 폴J마이어의 SMI과정을 4개월 동안 열심히 공부하기도 하고 능률협회, 인간개발연구원의 조찬강연을 청강하는 등 여러 가지 자기계발을 위한 노력을 해 왔다.

사실 나는 인간개발연구원에 정식으로 회원이 되어서 청강을 하기 시작한지 꽤 오래 되었다. 함께 강의를 듣는 사람들의 수준이 다양한 사회 지도층의 사람들이 모여서 진지하게 공부 하는 모습이 놀랍고 존경스럽다. 나도 이분들 사이에 끼어서 아침강의를 즐기게 된지 십 오년 남짓 된 것 같다.

인각개발연구원 안에는 여러 가지 소모임이 있다. 이업종교류회를 비롯해 시오노나나미 (鹽野七生)의 로마인 이야기가 한창 뜰 때에는 지중해 클럽, 중국이 세상의 각광을 받으면서는 차이나클럽 그 외에도 회원 상호간의 친목모임 등 여러 소모임이 있는데 나는 이런 모임에는 별로 관심을 두지 않고 지내왔다. 한 3년쯤 전에 월1회 책 쓰기 글쓰기모임을 한다고 해서 그냥 관심 없이 지내는데 몇 분의 권유가 있어서 구경삼아 나가 봤다. 20여명의 사람들이 하는 밝고 발랄한 분위기가 고등학교 때 자칭 양주동박사의 수제자라라고 하는 국어선생님의 강의 시간이 생각나게 하는 분위기였다. 사람들의 구성을 보니까 주로 사, 오십대가 주류이고 대학에 출강하는 분이 있는가 하면 중견 미술가 그리고 다양한 직종에서 인생을 멋지게 사는 사람들 인 것 같았다. 내가 함께 하기에는 너무 젊고 발랄해서 뒷자리에 앉아서 듣기나 하자는 생각으로 참석하기 시작했는데 벌써 3년이 다 되어간다.

오래 뒷자리에 앉아 있었던 것이 계기가 되어서 내게는 좀 과분한 에세이클럽 회장감투가 주어졌다. 아무리 생각해도 내게 어울리는 감투가 아닌 것 같아서 몇 차례 사의를 표했는데에도 안 받아 드려지고 내게 책임이 주어졌다. 지금까지는 그런 제안이 올 때마다 지난날 숭실대학교수가 하던 말이 생각나서 한사코 그 자리를 사양해 왔던 것이 이제 와서 생각하면 내게 그런 자리를 권유해주었던 여러분에게 좀 미안한 생각이 들 때가 더러 있었다. 늘 이런 기회가 올 때마다 빠지기만 해서 부담스럽고 부끄러운 생각을 갖고 살았는데 이번에도 빠지면 내 자신에게 부끄러울 것 같다. 그래서 내게 과분한 감투이기는 하지만 이런 기회를 주신 여러분들께 감사드리면서 가문의 영광이거니 하고 최선을 다해 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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