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2-09-07 15:00
찢어진 셔츠-임종렬 갤러리숲 대표
 글쓴이 : 홍보팀
조회 : 3,907  

딸로서 부모님 돌아가시고 나서야 자신이 두 분 분신이었음을 뼈아프게 깨달았다. 그 서러움으로 소리 내어 울고 있었다. 어머님이 나의 등을 어루만지며 물으셨다.

“왜 그렇게 슬프게 우느냐?”

“늘 곁에 있으니 그토록 그리워하지 말거라”며 웃으셨다. 기적이 일어나서, 돌아가셨던 어머니를 만났다는 기쁨으로 어머니 품에 안겨 어린 아이처럼 통곡을 했다. 이제는 슬픈 이별은 없겠다고 황홀해 하는 순간에 꿈을 깨고 말았다. 어머니의 체취가 가시기도 전에 또 다시 커다란 상실의 깊은 수렁으로 나를 빠뜨려 버렸다.

이제는, 환상이 아닌 현실에서 삼일 아니 단 하루 만이라도! 아니다, 찰나의 순간만이라도 어머니를 만져 볼 수 있다면. 딸로서 그 어떤 대가를 치룰 지라도 받아 드릴 수 있을 건만 같다.

엄마는 참으로 결이 고운 분이었다. 동양화 미인도의 살결 고운 여인처럼, 쪽진 머리에 꽂은 은비녀는 검은 머리칼로 더욱 빛이 났었고 그 아래로 흐르는 가느다란 목선은 참으로 고왔다. 그래서 엄마 치맛자락을 붙잡고 뱅뱅 돌면서 ‘엄마는 꼭 사슴 같아서 좋아요’ 라며 깡충깡충 뛰곤 했다. 한복치마 위에 기다란 하얀 앞치마를 질끈 동여매면 허리가 잘록하여지는 모습이 어린 내가 보아도 참 예뻤다. 엄마의 앞치마에서도 내가 좋아하는 쌀풀 향기가 늘 감돌았었다. 요리솜씨가 좋아서 잔칫집에 불려 다니시고, 바느질 솜씨도 좋아서, 나의 자랑스러운 색동저고리와 꽃무늬 뽀쁠린 원피스도 엄마의 작품이었다. 어느 날은 나와 함께 봄나물을 캐러 갔다가 실개천가의 버들개지를 꺾어서 버들피리를 만들어 주시다가 별안간 코피를 흘렸었다. 걱정을 하는 나에게 엄마는 귓속말로

“한창 물이 오르는 연한 가지를 꺾어서 벌을 받았나 봐”며 미안해하시는, 그렇게 마음씨도 여리고 착한 분이었다.

내가 여덟 살이었던 어느 봄날 이었다. 봄꽃들로 향기로운 뒤뜰은 밝고 따사로웠다. 앵두나무 아래에는 모이 쪼는 병아리들로 부산스러웠고 부서지는 햇살을 받은 병아리들은 더욱 노란 솜털처럼 포슬대고 있었다. 잘 익은 주홍빛 앵두 알을 맛있게 따먹고 닭장으로 향했다. 닭장 안에서는 수탉이 검붉은 벼슬을 곧추세우고 하늘을 향 해 목청껏 소리를 지르고 있었고, 암탉들은 알을 낳으려고 꼬꼬댁거리고 있었다. 알 낳는 모습을 신기하게 바라보며 기다리다가 금방 낳은 달걀을 두 손으로 감싸 쥐었다. 달걀은 부드럽고 따뜻했다. 작은 손 안으로 가득히 전 해 오는 따스함에 어린 가슴이 녹는 듯 했었다. 하늘에서 천사가 내려 와서 나의 두 어깨를 감싸 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내 마음은 병아리 깃털처럼 폴폴 날고 있었다.

설레는 기분으로 폴짝거리며 달걀이 식기 전에 할머니께 드리려고 수돗가 쪽으로 돌아서던 순간이었다. 평상 위로 눈이 멎으며 소스라치게 놀랬다. 그 곳에는 햇빛을 받아 눈이 부시도록 하얀 아버지의 와이셔츠가 마구 찢겨져 있었다. 너무나도 놀라운 장면에 그 자리에 멈춰 서고 말았다.

엄마는 늘 아버지의 셔츠를 삶아서 빨았다. 그리고는 칼라에 된 쌀풀을 먹여서 빳빳하게 다려 놓았다. 아버지의 외출 때마다 그 셔츠를 입혀 드리고 넥타이도 정성껏 매어 드렸다. 그러면 아버지는 멋진 신사가 되어서 위풍 당당히 나가고는 하였다. 아버지 셔츠에서 나던 쌀풀 향기, 그것은 가슴 깊이 들여 마실수록 마음의 평온을 가져오는 것 같았다. 그렇게 해서 그것은 내가 제일 좋아하는 ‘엄마의 향기’가 되었다

그렇게 소중한 아버지셔츠가 다시는 입을 수 없을 정도로 화창한 봄날 하늘 아래 널브러져 있는 것이었다. 나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상황에 엄마가 아니면 아무도 감히, 아버지셔츠를 망가뜨릴 수 없다는 확신이 생기면서 더욱 당혹스럽고 무서워졌었다. 그리고 자식들을 끔찍이 사랑하셔서 나와 함께, 주인공 이름이 임종렬 이었던 ‘바위고개’영화와 여성 국극단의 공연도 보러 다니셨던, 멋진 우리아버지의 위엄이 짓밟힌 것 같아서 가슴이 아팠다. 엄마가 얼마나 화가 났으면 그렇게 했을까. 무엇 때문에 그럴 수밖에 없었을까? 왜 이렇게 흉한 일을 하셨을까? 하루 종일 콩닥거리는 가슴을 억제하며 할머니와 오빠들의 눈치를 살폈으나 평소와 다름없는 분위기였다. 그 날도 엄마는 된장찌개를 바글바글 끓이고 봄나물을 상큼하게 무쳐서 저녁상을 차려 주셨다. 그제야 나는 안심하고 맛나게 밥을 먹을 수 있었다. 물론, 돈을 많이 벌어서 오겠다고, 멀리 가신 아버지께서 오셔서 셔츠를 찾으면 어쩌나 하고 불안하기는 했지만.

그 날부터 엄마는 자주 이불 빨래를 하셨고, 풀을 먹여 꼭꼭 밟아서 다듬이질을 시작하셨다. 처음에 부드럽게 시작한 다듬잇 소리는 점점 빨라지면서 나중에는 더욱 빨라지다가 해질녘이 되면 아주 요란스러워지곤 했다. 담 너머의 꽃구경을 하는가 하면 빈 하늘을 한없이 바라보는 것이었고, 대청마루를 닦다가도 어깨가 조용히 떨리는가 싶으면 굵은 눈물이 방울져 내리고는 하였었다. 밥을 할 때에도 태우기가 일쑤여서 누룽지를 먹는 기쁨도 자주 있었다. 엄마의 예쁜 미소를 빼앗은 그 해 봄은 몹시 더웠던 여름 속으로 그렇게 빨려 들어가고 말았다.

포플러 나무에서 매미가 얄밉게도 징징대던 그 여름이었다. 도랑 속의 발그스레한 실지렁이들이 맑은 물결을 역행하며 꼬물대는 모양을 신기해하며 들여다보다가 집에 들어왔을 때였다. 어떤 젊은 여자가 아버지와 다정히 앉아서, 엄마가 땀 흘리며 차려 주신 점심을 맛있게 들고 계시는 것이 아닌가. 내가 의아해하며 멋쩍어 하는 것을 눈치 채신 엄마께서 “작은엄마께 인사를 드려라”고 하였었다. 세 살 어린 동생은 사탕을 받아들고 좋아하고 있었는데, 작은엄마라는 호칭에 화가 난 나는 엄마의 만류를 뿌리치고 뛰쳐나오고 말았다. ‘우리엄마 보다 예쁘지도 않으면서’라고 중얼거리면서. 그 여자와 같이 웃고 계시는 할머니까지 미웠었다. 엄마의 슬픈 미소의 의미를 그제야 깨닫고 가슴이 아렸다. 엄마가 너무나도 불쌍해서 울었다. 평상 위에 나뒹굴던 아버지의 와이셔츠를 다시 떠올리면서 울고 또 울었었다. 하늘에 닿을 듯이 키가 큰 은사시나무도 내 곁에 서서, 유리 가루를 흩뿌리듯이 반짝이며 이파리들을 마구 떨게 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날 이후에도 어머니는 아버지의 와이셔츠 칼라를 빳빳하게 다리는데 온 정성을 다 바쳤었다. 작은어머니께서 다시는 돌아 올 수 없는 길로 떠나신 그 날까지! 스물 다섯 해라는 기나긴 세월을, 한결같이.

어머니가 그립다! 한 순간만이라도 좋으니 어머니와 볼을 비비며, 당신의 가슴에서 피어나는 향긋한 쌀풀 향기를 맡아 봤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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