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2-09-07 15:07
독일인들의 대화를 들으며...-이남옥 서울사이버대 가족상담학과 교수
 글쓴이 : 홍보팀
조회 : 3,510  

졸업시험을 치루는 딸을 도와주기위해 잠시 독일에 다녀왔다. 2주간 계속되는 시험기간 내내 우리 모녀는 매일 같이 대학도서관에서 갔다. 공부하기는 안성맞춤이어서 딸과 나는 시험이라는 스트레스를 받으면서도 그곳에서 공부하는 재미에 푹 빠져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그날도 어김없이 우리모녀는 아침부터 도서관을 찾아 공부하다가 점심이 좀 늦은 시간에 대학식당인 Mensa로 향했다. 이 식당은 12시부터 2시까지 운영되는데 우리가 한시 오십분에 도착했으니 점심시간이 거의 끝나가고 있었다. 식사를 받아와 빈자리를 찾아 앉았다.

막 식사를 시작하는데 한 여자가 우리 옆으로 와서 자리를 잡는다. 그리고 가져온 음식을 혼자 먹기 시작한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 여자에 대해 별 관심이 없었다. 그런데 조금 있으려니 한 남자가 왔다. 시간을 보니 벌써 2시 15분이다. 이미 음식 나오는 시간이 지나 버린 후이다. 남자는 식사를 못하게 된 모양인데 이유는 우리 옆에 있는 여자를 기다리다 시간을 놓친 거 같다. 대학식당입구에서 여자를 계속 기다리다가 식사시간을 놓쳤고, 혹시나 해서 안으로 들어왔다가 식사를 하고 있는 여자를 보게 된 것이다. 결국 자기만 굶게 된 상황이 되었다.

남자의 짧은 상황설명이 있고 난 후에 여자의 대답과 태도가 내게는 매우 이색적이었다. 그 여자는 Mensa시간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자신은 더 이상 기다리지 않고 당연히 음식을 타러 갔다고 했다. 말할 때 그녀의 표정에서는 전혀 미안한 기색이 없다. 아주 거침없이 객관적이고 논리적으로 말한다. 대답을 들은 남자도 할 말이 없는지 이야기를 진전시키지 못하고 결국 식당 옆에 있는 카페테리아에서 간단한 샌드위치를 사가지고 온다. 그리고는 그들은 함께 식사를 한다.

엿들으려고 한건 아니지만 한국인이 내겐 그들의 대화가 무척이나 생소했다. 내가 그 여자였다면 잘, 잘못을 떠나서 우선 식사를 못하게 된 상대방에게 미안함을 표현했을 거 같다. 그리고 안타까와하며 그가 식사를 할 수 있는 방법을 함께 찾는 척이라도 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들의 대화에서는 이성적인 말만 오고간다. 말하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이나 큰 감정의 동요가 없다.

그 대화를 들으며 처음 독일에 유학 왔을 때 당황했던 것들이 생각났다. 나는 사실을 주고받는 이런 식의 독일인들의 말투에서 여러 번 상처를 받았었다. 함께 기숙사에 살면서 친해진 친구가 갑자기 다가와 정색을 하며 내가 문을 제대로 닫지 않았다고 주의를 주던 일, 늘 잘해주시기만 하던 나이 많으신 기숙사사감수녀님이 얼굴이 굳은 채로 내가 빨래방을 사용시 잘못한 것을 또박또박 추궁(?)하신 것 등이 생각났다.

대학에서 수업시간에도 많은 문화 충격을 느꼈었다. 세미나시간에 학생과 교수는 동등한 대화파트너 같은 느낌으로 토론한다. 학생이 단순히 교수의 이론을 받아들이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교수의 이론이나 주장에 대해 반박할 경우도 많이 있다. 이때 독일학생들의 표현이 지나칠 정도로 객관적이어서 나는 혼자서 남몰래 쩔쩔매곤 했다. 내가 잘못한 것도 아닌데도 교수님에게 예의를 지키지 못한 것은 아닌가하는 마음에서 였다. 그때마다 나는 독일인이 참 차갑다고 생각했다.

그들의 대화에는 논리와 사실이 중요하고 정, 위계나 배려 등이 머무를 자리가 없다. 대화를 사실전달과 관계의 차원에서 구분해 본다면 독일인의 대화에선 사실 메시지만 있을 뿐 관계의 메시지는 적다.

한국인의 대화에서는 오히려 관계의 메시지가 중요시 된다. 관계의 메시지를 전하려면 상대방의 마음도 읽어야 하고 예의 갖추고 배려도 해야 한다. 사실을 전하더라도 완곡한 표현을 해야 하며 간혹은 표현의 자제, 더 나아가 차라리 말하지 않는 것을 선호할 때도 많다. 그러다보니 꼭 해야 할 이야기도 묻혀 버리는 경우도 더러 있다.

그에 비해 독일인의 대화는 지나치게 사실적이다. 사실을 얘기하니 반박할 수도 없다. 도대체 정이 없다는 느낌을 피할 수가 없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그렇게 냉정한 대화를 나눠도 그들은 싸우지 않는다. 원수가 되지도 않는다. 들을 때도 역시 사실로만 듣기 때문인가 보다. 잘못을 지적했다고 해서 싫다거나 밉다는 것은 아니라고 알아듣는다. 그래서 서로를 벼량 끝까지 몰고 가던 토론 후에도 그들은 어깨동무하고 나간다. 사실의 메시지가 관계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실은 사실일 뿐이지 그것이 관계를 위협하지 않는다. 참 다른 대화 문화이다.

옆에서 식사를 하는 두 남녀는 매우 오래도록 그 주제로 대화를 계속했다. 전혀 감정의 동요 없이... 그러나 잠시 어긋났던 간단한 상황이 이토록 오래 대화를 끌고 갔던 것은 어째 사실대화로 해결되지 않는 ‘무엇’이 있어서는 아닐까? 그냥

'아이구 미안해'
그럼 상대는
'괜찮아! 뭘'
그러면 끝나지 않을까? 뭐가 좋은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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