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03-10-14 17:44
[번지는 나눔의 물결]전문가 좌담-박원순 상임이사 발언내용
 글쓴이 : 홍보부
조회 : 6,204  
▶ 기부란 무엇이며, 왜 기부를 해야 하는가?

기독교에서는 50년마다 소유물을 본래 샀던 가격에 되돌려주는 ‘희년’이란 게 있다. 일정 기간 자신이 소유했던 것을 다시 내놓는다는 의미다. 종교적 측면이 아니더라도, 천민 자본주의가 아닌 청교도적 자본주의에서는 일정한 금도의 윤리와 철학이 있다. 부를 소유하는 것은 일정한 사회적 소임을 떠안는 것이고, 극단적인 빈부갈등을 해소할 책임을 지는 일이다. ‘기부’는 이런 역할과 책임을 다하는 수단이며, 동시에 즐거움의 영역이기도 하다. 흔히 기부를 많이 하는 이들은 ‘기부할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한다. 기부의 즐거움, 나눔의 행복은 느껴본 사람만이 아는 ‘묘약’이다.

▶ 우리 사회 기부문화의 현실은?

우리 사회의 기부문화는 이미 큰 변화의 물살을 타고 있다. 최근 들어 언론매체들이 기부문화에 적극적인 관심을 보여 기부 참여를 독려하고, 새로운 형태의 재단들이 생겨나 시민들을 기부의 장으로 끌어내고 있다. 우리 사회가 돈을 잘 쓰는 방법에 대해서도 고민하기 시작했다고 볼 수 있다.

‘기업’보다 ‘기업인’의 기부가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여전히 기업인들이 자기 주머니에서 기부금을 내는 게 아니라 기업의 돈을 내는 게 우리 현실이다. 어쨌든 기업들이 이미지를 높이기 위해 기부에 대해 적극적인 관심을 보이는 것은 바람직하다. 아름다운재단의 경우 한 달에 몇 십 건씩 기부 제안이 들어온다. 심지어 사채회사나 담배회사 같은 곳에서도 문의가 들어와 고민스러운 적도 있었다.

물론 아직도 크고 강고한 벽이 있다. 여전히 ‘장사가 최고’이며 ‘세금 많이 내는 게 국가에 충성하는 길’이라는 사고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하는 경영자들이 있는 게 현실이다.

▶ 사회, 문화적인 제약 요인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가?
미국의 경우 2000년 기준으로 1인당 평균 기부액이 연간 개인소득의 3.1%인 150만원 정도지만, 우리는 1인당 10만원 정도로 1%가 채 안 된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우선 우리는 과거 모금기관에 대한 신뢰에 문제가 있었다. 수재의연금 등이 정확히 기부자에게 전달되는지 하는 의구심이 아직까지도 남아 있다. 생활 속에서 편리하게 기부할 수 있는 제도적인 장치도 부족했다. 기부를 하고 싶지만 계기를 찾기가 쉽지 않았다. 미국에서는 세금 고지서 뒷면에 기부단체나 기관을 나열해 놓고 납세자가 어느 한 곳에 체크하면 일정 금액이 자동으로 그곳으로 전달되기도 한다.

▶ 교육을 통한 ‘나눔의 인프라’ 구축은 어떠한지?
남을 이기고 경쟁에서 살아 남아야 하는 게 요즘 학교 분위기다. 나누고 공존하고자 하는 의식이 키워지기 어렵다. 최근 어린이 벼룩시장 같은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있지만, 일회성 행사보다는 일상적인 반복 교육이 필요하다. 선진국의 경우 아예 아이들을 상대로 한 교육 프로그램이나 이를 운영하는 별도의 운동단체가 많다. 성인들의 경우에는 언론의 몫이 절대적이다. 적어도 기부에 관련해서는 오른손이 한 일을 왼손이 알게 해야 한다.

▶ 법이나 제도 가운데 개선돼야 할 부분은 어떤 점들이 있나?
규제 완화와 더불어, 모금하는 데 들어가는 실비를 인정해주는 게 급하다. 미국의 경우 모금액의 13%를 경비로 쓸 수 있지만, 우리는 아예 비용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다. 이 때문에 많은 단체들이 임시방편으로 모금에 필요한 비용을 마련하고 있는 실정이다. 큰 사업을 위해서는 모금액 가운데 일부를 장기적으로 적립해 나갈 필요가 있는데도, 3년 안에 모금한 돈을 다 쓰도록 하는 불합리하고 현실에 맞지 않는 조항도 있다.

아름다운 가게는 매출액의 10%를 부가세로 낸다. 이를 안 걷는 게 정부의 손실이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 정부가 아무리 노력을 해도 미처 돌보지 못하는 사각지대가 생기기 마련이다. 이 사각지대를 민간에서 담당하고 있다는 믿음이 필요하다. 정부가 민간을 적극 후원하고, 기부자에게는 세제혜택 등 적극적인 지원을 해야 한다. 비영리기구가 오히려 참신한 아이디어와 적극성을 바탕으로 더 좋은 성과를 낼 수도 있다. 정부 혼자서 하는 시대는 이제 지났다. 정부와 비영리기구가 사회 공동의 과제를 함께 해결해 간다는 인식이 중요하다.

(한겨레 2003-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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